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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안개바다 × 돌탑

유비호



좌) 망향탑 N37.813898 E126.245448, 2015, 200×149cm, photograph
우) 안개 잠 fog, 2015, single channel video screen(11min 36sec)


북위 37.813898, 경도 126.245448에는 자그마한 돌탑 하나가 있다. 이곳은 강화도 서편에 위치한 교동도의 최북단이다. 내가 이 돌탑을 처음 본 것은 지난해 작품촬영을 위해 장소를 물색하러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했을 때이다. 교동도는 일몰 전후까지 출입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수한 장소에 위치한 비무장지대에 근접한 섬이다. 

내가 이 돌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 탑이 화려하거나 역사적으로 오래됐기보다 현재 한국사회에 살아있는 이들의 가장 그리움이 깊고 오래된 마음이 깃들여져 있는 이유이다. 

탑은 교동도 북단에 위치한 망향대(望鄕臺)에 오르기 전 오른편 자그마한 텃밭에 자리하고 있다. 탑이 있는 곳은 어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풍경을 지니고 있다. 먼 풍경에서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철퍽거리는 파도소리와 주변 나무와 풀잎 사이로 들려오는 산들바람, 풀벌레 소리가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군사적으로 특수한 지역이라 간간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공포탄의 굉음과 이에 놀라 울부짖는 개 짖음을 제외하곤 어느 시골과 별반 차이가 없는 곳이다. 

이 탑은 주변의 돌과 나무토막을 선별하여 정성 들여 쌓아 올린 3단 구조로 구성된, 성인 키에 못 미치는 나지막한 크기를 지녔다. 탑의 상단은 껍질이 벗겨진 마른 나무토막이 얹혀져 있어 아마도 노인이 됐을 이들이 숨 가쁘게 쌓아올렸을 것임을 추정한다. 

근현대화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유난히 큰 사건·사고를 겪은 이들이 많다. 예고 없이 떠나보낸 이들에 대해 살아있는 이들의 그리움이 한없이 크고 많은 이곳!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마을, 들, 산, 언덕, 바다 등 우리 삶 주변에 혼재해 있는 일상적 장소들이다. 어디 이 작은 산하(山河)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사고가 없으랴마는… 

작년 한 해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을 ‘그리움’에 대한 정서가 어떠할지 그리고 이 감정은 어떤 뉘앙스로 나 혹은 우리에게 솟아나고 다가올지를 상상하며 모호한 ‘그리움’의 정서를 상상해보곤 하였다. 개인적 정서에서 시작된 ‘그리움’의 감정은 무의식 바닥에 자리하고 있을 죽음, 고독, 외로움, 슬픔의 영역에 다다랐을 때,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눈앞의 이익을 위해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정의롭지 못한 시대에 대한 분노 등이 뒤섞여,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 시기!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슬픔과 그리움이 혼재되어 있을 미지의 장소를 향해 무작정 야간이동을 해야만 했다. 이 야간이동은 깊고 슬픈 긴 어둠의 시간 터널을 지나 예상치 못한 뜻밖의 장소에 나를 안내하곤 하였다. 그곳에 도달했을 때쯤이면,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풀어놓아 울었다.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설화 중 절개 굳은 아내가 외지에 나간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어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설화가 곳곳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여전히 분단 70년.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 대형재난으로 억울하게 죽은 이와 살아있는 이들의 슬픔과 분노는 여전히 이 시대에도 망부석 설화가 유효하다고 생각하니, 내가 설화 속에 살아가고 있나 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다시 외롭고 쓸쓸한 날이 오려나 보다.


- 유비호(1970- ) 홍익대 회화과 학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석사. 성곡 내일의 작가상 수상(2014). 성곡미술관 개인전 ‘해질녘 나의 하늘에는(2015)’외 개인전 7회. 백남준아트센터 ‘다중시간(2015)’. 아르코미술관 미디어프로젝트 ‘VIDEOLOGUE(2013)’ 외 국내외 미술관 전시 다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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