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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구수한 한국의 석조

한진섭

40년 가까이 돌조각만 해오고 있지만, 돌은 신비한 재료이다. 돌 작업을 하다 보면 돌가루 먼지가 나고 육체적으로 힘이 들며
위험한 상황도 발생한다. 하지만 진실 되고 솔직한 재료이기에 싫증나지 않는다. 올해처럼 비도 적고 불볕더위가 이어지는 여름 작업은 마스크, 모자, 보호안경 등 기초 장비만 착용해도 줄줄이 흐르는 땀을 주체할 길 없다. 그러나 작업을 마친 후 온몸을 감싸는 시원함과 뿌듯함은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돌과 싸워서 이기려 하지 않고 돌과 대화를 하면서 잘 구슬리고 토닥거리며 작업을 하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작품 표면의 터치와 볼륨감을 정확히 읽어내기 위해서는 수차례 작품을 가까이에서 그리고 멀리서 살펴가면서 그라인더와 망치질을 해야 한다.



5-1평화, 2007, 대리석, 120×54×88cm


조소의 재료는 석조, 철조, 목조, 테라코타, 청동 등 다양한 재료가 있지만, 작가의 성격과 맞아야 한다. 다시 말해 궁합이 맞
아야 한다. 성격이 급하거나 다혈질의 소유자는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철조가 어울리고, 끈기가 있고 참을성이 있는 성격의 소유자는 석조가 어울린다. 그래서 작가의 성격과 작품의 경향, 재료의 삼박자가 잘 맞아야 편안하고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돌도 제각각 독특한 성격이 있다. 트라베르치누(Travertino)라는 로마에서 나는 돌은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같이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이 있다. 네로벨지움(Nero Belgium)이라는 검정 대리석은 아가씨처럼 깍쟁이 같은 느낌이 있고, 미켈란젤로가 주로 사용하던 돌로 알려진 스타투아리오(Statuario)라는 흰색 대리석은 정교하고 섬세하며 정직한 청년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돌이란 녀석들은 쨍쨍거리는 놈, 파삭한 놈, 푸근한 놈 등이 있는데, 입자의 크기도 천차만별이고 색깔도 다양하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흰색으로 보이지만 흰색도 자세히 보면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행복한 하늘이, 2015, 대리석, 66×46×70cm


이탈리아는 대리석이 풍부한 나라다. 대리석은 입자가 작고 조직이 부드럽고 고와서 갈아내는 석조기술이 발달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는 화강석은 입자가 크고 단단하여 정과 망치로 쪼아내는 기술이 훌륭하다. 유럽의 화려한 장식적 조각과 달리 한국의 석조각은 절제되고 생략된 아름다움이 있다. 깊은 내면적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우리만의 고유한 미적 창출방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석조각은 아름다우나 사치스럽지 않고, 소박하나 초라하지 않다. 아직 한국 석조각의 우수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유럽과 다른 우리만의 고유한 방식이 개발되어 맛깔스럽고 구수한 한국미를 자랑할 수 있다. 석조각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전통이기도 하다. 석조각에는 한국의 전통방식을 승화시킨다는 장인정신과 예술적혼을 불태우는 집념이 배어 있다


- 한진섭(1956- ) 홍익대 미술대 조소과 및 동대학원 졸. 이탈리아 까라라국립미술대 조각과 졸. 일본 하꼬네야외미술관 주최 로댕대상전 우수상 수상. 제12회 개인전(가나아트갤러리). 한국조각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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