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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히치콕의 새, 내 작품의 새, 그리고 기러기

김경옥

작품에 오브제로 제일 많이 만든 것이 새였다. 파랑새, 빨간 새, 색동저고리 같은 오방색의 새, 꽃도 특히 화분에 심은 꽃을 많이 만들었다. 여러 종류의 열매도 만들었다. 내 속에 있는 새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즐거움, 희망, 아름다움, 꿈, 열망, 아가, 연인, 책, 사랑, 그리움, 기다림, 시, 영화, 바람 등 참으로 다양한 의미를 담았다. 꽃도 열매도 다 이런 의미를 두었다.

유명한 미국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을 아는가? 영화에 자기 얼굴을 한번 쓱 비추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부러웠던 감독이다. 히치콕을 영화 <사이코>와 <새>에서 만난 지는 꽤 오래됐다. 원래 스릴러를 좋아해서 명탐정 셜록 홈즈의 팬이고 여류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스릴러도 좋아한다.

명연기를 펼치는 포아르 탐정, 자그마한 할머니 탐정 미스 마플. 작업실에서 그라인더 소리, 폴리 냄새에 녹초가 돼 들어온 날은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고 또 보며 피로를 푼다. 참 묘한 습관이다.


김경옥, 아가야 너도 기도하렴, 2015, Bronze, 45×28×45cm

몇 해 전에 샌프란시스코 근방에 있는 보데가 만(Bodega Bay)이라는 곳을 가본 적이 있다. 영화 <새>의 여주인공이 새장 속의 새와 더불어 나룻배를 저어 베이를 건넜던 장소라 해서 찾아갔다. 직접 가보면 다 그렇듯이 그냥 넓고 깊은 물만 흐르는 곳이었다. 호숫가 근처가 매우 황량했다. 우리 나라 같으면 호수를 보여준다고 겹겹이 카페를 세웠을 텐데. 근처 자그마한 판잣집에서 벌겋게 달군 조약돌 위에 큼지막한 조개를 구워서 팔길래 먹으면서 애써 그 장면 속에 빠져 보았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있는 메이시백화점 앞에는 여주인공이 가게에서 새장을 사서 차도를 건널 때 보이던 커다란 탑이 아직도 있다. 지금은 크리스마스 때 높다란 트리를 해놓고 아이들과 연인들이 스케이트를 씽씽 타는 곳이다. 영화에서는 히치콕이 전차에서 내리는지 타는지 행인인지 모를 모습으로 나타났다. 새까만 새를 수없이 만들어 사람들을 쪼아대고, 한 동네를 공포로 몰아넣는 그런 끔찍한 새를 만든 할아버지 같지 않다.


김경옥, 희망은 희망으로, 2000, 나무, F.R.P, 400×160×270cm


직업병인 손목이 저리고 쑤시고 아파 정형외과에 앉아 있는데 부러진 뼈를 맞추러 온 사람으로 가득하다. ‘그저 넘어지지만 말자’고 목발을 한 환자를 보며 중얼거리다가 눈이 마주치니 웃는 둥 마는 둥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옆에 흐트러져 있는 잡지를 들었다. 스르륵 훑어보는데 힘차게 나는 새떼들이 보였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기러기에 대한 기사를 흥미 있게 읽었다. 기러기 떼가 날면서 우는 것은 뒤따라가는 새가 앞서가는 새를 격려하기 위함이란다. 한참 날다가 힘들면 앞서가던 새와 자리를 바꾸어가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이 가능하단다.

한 마리 새에 이상이 생기면 다른 두어 마리가 내려와 같이 있다가 다시 합류하여 날아간다고 한다.
나는 기러기 떼가 그리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저 하늘을 신나게 날아가는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주고 아껴줄 때 더 큰 역량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저 두 날개로 나는 새가 알고 있다. 누구에게 배웠을까. 내 작품의 새들은 어떨까

- 김경옥(1943- ) 홍익대 조소과, 성신여대 대학원 졸. 인사갤러리, 선화랑, 현대화랑 등 개인전 18회, 해외전 24회 포함 450여 회 단체전 참여. 초대전 320여회, 국내외 아트페어 다수 출품. 현 춘천 MBC 방송국 현대조각전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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