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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예술 외 변두리 것들 - 예술을 위한 나의 딴짓거리들

이용백



백두산 프로젝트를 위한 에스키스, 2012



시골서 평화롭게 할머니 밑에서 자란 나에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엄마 손에 이끌려 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지옥 같은 시절이 시작돼서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유학 5년, 시간강사 7년, 겸임교수 5년……. 33년을 학교에 다닌 셈이다. 학생 때도 싫더니만 선생이 돼서도 학교는 피곤했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아이들의 맑고 맹한 눈을 쳐다보면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나’를 생각하곤 했다. 아마도 나는 맑고 깨끗한 눈망울보다는 충혈되고 탁한 눈을 가진 아이들을 더 갈구했는지 모른다. 레비스트로스(인류학자, 1908-2009)가 왜 교수를 일 년 만에 그만뒀는지 이해를 했건만 나에게 실천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8년 전 고향 김포로 들어와 친구의 도움으로 작업실을 지었다. 당시 전속 갤러리도 나오고 곧잘 운영되던 조그마한 프로덕션도 그만둔 상태라 살길이 막막했지만 통장에 있는 전재산 120만원을 투자해서 매화 여섯 그루를 샀다. 이렇게 시작하여 한겨울 뒷산에 핀 미친 진달래를 마당으로 옮겨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800그루가 좀 넘는 것 같다. 엄청난 노가다였다. 매년 4월 말이면 제법 자리 잡은 매화 향에 취해야 한다. 이 시기가 하필이면 우리 동네의 농부들이 수박 농사를 짓기 위해 퇴비를 잔뜩 주는 시기라 낮에는 매화 향, 밤에는 그윽한 똥내음를 맡아야 한다.


즐거움과 고통은 왜 동시에 오는 것인가?

2000년의 어느 날, 청계천을 지나다 아름다운 물고기가 보였다. 디스커스란 열대어인데 색과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이름도 수십 종에 달했다. 당시 <인공 감성>이란 작품으로 전시하고 나서 다음 작업을 구상하고 있던 차에 이 물고기를 발견한 것이다. 교배를 통하여 무늬와 색, 패턴으로 다양한 새끼를 부화할 수 있었다. 화가들이 두 개의 물감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 듯 물고기를 가지고 이 짓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나의 섞인 색과 무늬를 보는데 무려 2년이 걸렸다. 어느덧 40개가 넘게 된 어항의 물고기들을 돌보는데 하루 두 시간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5년을 보냈다.


가끔 이것으로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다. 5년 동안의 물질을 통해 하나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나는 물고기를 키웠던 것이 아니라 물을 키웠던 것이란 사실이다. 물쟁이들이 하는 말로 물고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물고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키운다는 것이다.


내 작품 변화를 위한 예술행위1999년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전으로 귀국해서 열심히 작업하던 차에 미술계에 염증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모든 전시를 다 취소하고 자연 생태 다큐멘터리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형의 도움으로 스쿠버 장비와 엄청나게 고액이던 비디오하우징을 구매하고 무작정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해에 일 년 동안 100회 이상의 다이빙을 했다. 시신도 보고, 물에 빠진 여자를 구조도 해보고, 강원도 양양에서 제주도에만 서식한다던 범돔도

보고(범돔은 지표 어종 같은 것인데, 이게 양양에 살고 있다니 이때부터 바다가 이상했었다.)…. 이렇게 2년을 보냈다. 생태 다큐멘터리는 ‘환갑 이후에 여윳돈 가지고 해야 할 짓이구나.’를 컴컴한 수심 36m에서 느끼게 되었다. 이날의 로그 기록이 내 다이브 컴퓨터에 남아 있다.


요즘은 무엇에 미쳐 있느냐고? 빈티지 오디오……. 드디어 앰프를 하나 만들었다. 8년 만에 집중적으로 오디오에 미친놈의 길로 접어든 듯하다. 1930년대 웨스턴 혼 디자인과 1936년산 웨스턴 일렉트릭 프리에 1963년 진공관이 꽂혀 있는 2015년 내가 만든 앰프로 몸각(Body Feeling)하고 있다.


하도 이 짓 저 짓 많이 하고 다니는 날 보며 사람들은 헛짓거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가장 중요한 전시를앞둘 때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낚시 장비를 챙겨 피신을 떠나곤 한다. 예술 행위는 작가의 에너지 방출, 소비 또는 허비 형태로 나타난다. 배터리는 방전되기 전에 충전이란 시간이 꼭 필요하다.



이용백(1966- ) 홍익대 서양화과 및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 회화과 졸업. 월간미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젊은 작가’(2003) 선정. 토탈미술관 개인전(2013), ‘플라스틱’전(아라리오갤러리, 2008), ‘앤젤-솔져’전(+gallery, 나고야, 2006).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가(2011)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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