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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천신만고(千辛萬苦)

문홍규

“모든 사물은 각자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받았던 큰 충격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었지만, 그 간절한 소원을 이룰 수 없다는 허무감에 좌절하고 있을 때 이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였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나의 존재는 무슨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면 칭찬을 많이 들었다. 방학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이유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꿈을 가졌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을 비롯한 운명은 그림 그리며 사는 행복 바깥으로 나를 밀쳐 냈다.

학창 시절을 그림의 변방에서 보내고 장교로 입문, 거기서부터 다시 그림의 희망을 싹 틔우기 시작했다. 군인으로 사는 생활과 그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도 하고 양쪽의 일을 병행해 나가는 것 또한 정말 어려웠다. 열심히 공부하고 실습했지만 체계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결국, 육군대학 졸업 후 탄탄하게 보장되어 있던 청운의 꿈도 뒤로 한 채 제주도로 내려가 22년 동안 그림을 배우고 그렸다.



황토밭어린시절추억, 혼합재료, 116.8×91cm

황토밭 위에 펼쳐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작품의 시작이었다. 시골의 황토밭 위를 뒹굴면서 자치기, 연날리기, 스케이트 타기, 밤하늘의 별들, 새가 울고 꽃 피는 뒷산 길. 밤하늘을 날던 천사와 여름밤의 나무 횃불, 귀신 이야기 등 유년시절의 행복과 그를 향한 그리움이 작품을 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바탕을 한지죽으로 만들어 그림 전체의 질감을 황토처럼 표현하고 또 그 위에 사물들을 질박한 한국적인 미감으로 드러내 왔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에도 더 높은 차원의 배움을 향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뜬 눈으로 몇 날을 지새우며 고민한 끝에 또 한 번의 결심을 하고 핏발선 눈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그야말로 그림을 향한 불타는 의지를 실천해 나가는 큰 사건이었다.

3번의 인생행로 변경!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그때 알았지만 저질러 놓은 일이라 서울에 오자마자 미술대학 졸업, 국가 미술대전 출품, 수많은 단체전 개인전, 그리고 좋은 그림 관람 등 글자 그대로 동분서주, 좌충우돌을 반복하며 원 없이 보고 배우고 그렸다. 그 후 인사동 작업실과 양평 오두막 작업실을 거치면서 10년간 두문불출하고 매일 코피 터지게 작업하는 사람이 됐다.



후투티스토리, 한지죽, 72.7×60.6cm

수염은 생선 가시처럼 곧추서고 머리는 쉬었다. 그러다 10월의 가을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가늘고 긴 화업이 어느덧 30년이 넘어서고 내 나이도 70을 넘어간다.

- 문홍규(1946- ) 한려대 미술학과 졸. 개인전 10회, 단체전 3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특선•우수상, 구상회전 특선 2회 우수상 1회, 대한민국 한국화대전( 특장전) 대상, 경향미술대전(경향신문사)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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