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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페인팅에 대한 에세이

샌정

나무 한 그루 위로 보이는 하얀 구름, 그 한가운데에 스스로만의 가상적 생각의 선을 그어 그 영역에서 하나의 캔버스를 떠올린다. 거기 안에서 찰나의 사유가 시작되고 몇 번의 기본색을 그 위에 던지는 시점에, 바람이 캔버스의 흰색 바탕을 밀어내고 구름 안의 화면은 서서히 넓은 하늘로 스미며, 더이상의 상상에서의 사각형 안 이미지는 흔적이 없다. 그 후 그 자리는 우주의 한 좌표가 있을 뿐 한때, 생각의 자리가 되었던 어느 높은 하늘에서의 이 캔버스는 허공 속 페인팅의 습작이 되었다.



Untitled, 2015, oil on canvas, 130×162cm

평면에 어떤 무엇을 그려내는 회화의 역사를 떠올리면 내용적 영역과 깊이가 가없다. 때때로 그런 지난 시대의 작품들 안에서, 지금의 현대미술에서 접할 수 없는 것들을 만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명료하지 않다. 하지만 올드 마스터스(Old Masters)에 의해 마쳐진 작품들은 다른 의미적 공기감을 지니며, 어느 순간 논리적 설명 너머로 컨템포러리 아트의 중심에 자리한다. 회화의 질을 가장 안쪽에서 말하는 이러한 옛 시간 안에서의 진지함은 불현듯 현대 미학의 근간으로 자리하며, 이처럼 가장 오래됨과 가장 새로움에 대한 고찰은 각각의 극점처럼 하나의 축 안에서 의미 있게 접한다는 견해이다. 일정의 형태와 일정의 색채들은 인간 사유의 끝점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어렵게 찾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러한 이상적 회화의 모색은 미술사 안에서 여전히 사려 깊게 지속 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팔레트 위의 물감이 화면에 옮겨질 때 그 색은 더 이상 여러 색 중의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우린 그 사이사이 자리한 비워진 듯 한 공백 상태에 가까운 시간을 쓰고 난 후 니체의 ‘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 문체의 옆길에서, 다른 조감도를 본다. 또한, 이어서 어떤 것에 대한 상념 뒤로 사색의 끈은 길어진다. 주어진 화면에 붓질로 이어지는 흔적의 누적은 생각의 실체이다.

페인팅은 이렇게 이차원에 하나의 사고의 창이 되는 가상의 공간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다. 캔버스가 물리적으로 규정하는 사각의 한 면은 하나의 제한적 평면이기는 하지만, 무제한적 정신 세계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사람의내면세계 안에서 추상적이며 중의적이고, 또한 자연과 인간의 애티튜드 뒤에 오는 아날로그적 본질이다. 더 나아가 하얀 평면은 아직 일구어 본 적이 없는 생각의 터, 가끔은 그 안에서 오랜 망설임을 필요로 한다.

빈 하얀 캔버스는 생각의 시작이며 그 생각의 끝은 완성이다. 하나하나의 작은 습작들은, 낮은 곳에 자리하는 들꽃 같으나, 그 누적된생각들은 은하계 안에서 부유하는 존재의 의미까지도 넘본다. 그러하기에 먼 태산을 바라보다가도 가까이에 자리하는 들풀을 때 없이 바라본다. 캔버스 화면을 비우는 사유, 화면을 채우는 선과 색들 그리고 화면을 벗어나는 사유... 다음의 대상을 향한 사색적 접근은 논리와 비논리의 두 울타리를 넘나들고, 기존의 원칙 밖에서 그려지는 회화의 논리는 비논리에 가려진다. 흔하지 않게 이런 일반 분석 밖에서 작품은 다른 미래를 열어 보인다. 회화의 세계는 그렇게 그리는 자의 사유 안에서 나무처럼 자란다.

회화의 역사는 저만의 희소성에서 진화와 혁명에 의해 맥을 이으며, 우주를 맴도는 행성들처럼 인간의 감성 안에서 그렇게 다른 밝기로 자리한다. 내면세계 풍경 안에 또 하나의 코스모스가 있고, 그것은 관조적 형식 후에 그려지는 한 작품으로서의 페인팅이 될 수 있다.



- 샌정(1963- ) 홍익대 서양화과 졸,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 졸, MA 파인아트 첼시컬리지 오브 아트&디자인 졸, 마이스터슐러, 아카데미브리프. ‘원더플 픽춰스’ 일민미술관(2009), ‘와일드우드 에어’ 국제갤러리(2009), 쿤스트하우스 메트만(2001). 레지던스, 이아아베(2005)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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