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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폭포- 고매한 정신처럼

송필용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작업실에서 인문적인 풍경작업을 해오면서, 1999년 금강산을 탐승할 수 있었다. 금강산수의 아름다움은 골산미의 빼어남과 더불어 물의미묘한 변화가 연출하는 신비스러운 기운이 감동적이었다. 옥류동 비취색 물빛의 오묘함, 물의 흐름이 아름다운 소(沼)와 담(潭)의 맑은 생명력 그리고 하늘에서 선녀가 하늘하늘 춤추며 내려오는 것 같은 하얀 폭포 줄기의 유려한 흐름, 장대한 큰 폭포들의 거침없는 물의 낙하 등 폭포의 강렬한 에너지를 통해 다시금 물의 의미를 금강산에서 발견했다. 수많은 물방울의 낙하가 모여서 웅장한 폭포가 되어 잠자는 땅을 흔들어 깨우듯이, 거침없는 물은 세상의 모든 찌꺼기를 시원스럽게 씻어주고 있었다. 태초의 시원처럼 물의 원형이 그리움의 존재로 다가오는 무한의 공간이 되고 있었다. 특히 물과 대기의 천변만화(千變萬化)는 현실의 대상을 어루만지듯 넘나들면서, 미묘하고 기이한 숭고함과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 땅을 흐르는 금강산의 물은 그 대상을 넘어 투영돼오는 초자연적 차원이며, 심오한 경지가 열리는 것이었다.

폭포- 고매한 정신처럼9, 2014, oil on canvas, 194x112cm

물은 예로부터 우주 자연의 이치를 함축하고 있는 존재며, 인간사유와 행동의 근거가 되어왔다. 물은 곧 생명의 근원이고 사유의 흐름이다. 작업을 통해 물을 연구하고 그린다는 것은 풍경을 재현하는 내용보다는 물의 깊은 뜻을 담아본다는 의미이다. 풍경의 일부이며 부분으로서의 물이 아니라, 물 자체를 그린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시에 물은 내 자신이기도 하며, 그러한 물을 매개로 하여 물의 감성과, 물의 본질에 더더욱 관심 갖게 되었으며, 상선약수( 上善若水)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흐르는 물이 극적으로 물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고 진한 감동을 주는 것도 폭포의 놀라운 변화들 때문이다. 폭포는 물의 강한 에너지를 분출하며 생명을 잉태하는 역동적 감흥을 선사한다. 그리고 세상을 거침없이 씻어내는 영혼의 울림이 있다. 폭포라는 구체적 대상의 재현적 의미보다는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기운으로 가득한 긴장의 순간을 시각화하고 청각화 한다. 이를테면 감각적 현실을 넘어서는 어떤 세계를 열어가는 것이다.

물보라의 몽환적인 울림, 오랜 세월 떨어지는 물을 견디며 둥글게 닳아진 돌과 바위들, 폭포의 포말과 물이 머물고 가는 소와 담들… … 무한의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그려간다. 생생한 물감의 질료에 의해 물줄기가 흘러내리듯 물감이 흐르고, 순발력 있게 긋고 칠한 붓질과 붓의 속도, 그리고 물방울의 튕긴 자취와 싱싱한 소리가 화면을 극적인 에너지의 축으로 만든다.

폭포는 오랜 시간 동안 내 자신과의 호흡 속에서 육화된 존재로, 구상도 추상도 아닌 나의 몸 속에서 우러나온 이미지들로 폭포의 숭고한 기운과 느낌, 정신적 공명을 가시화 하는 작업이다. 기존의 관념적 시선과는 다른, 인간의 지각 너머에 존재하는 생성 중인 새로운 지각의 폭포를 그린다. 가시적인 것을 매개로 비가시적인 것이 드러나게 하는, 형태가 있는 것을 통해 형태가 없는 것을 그린다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지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잠재적 세계와 폭포의 정신적 가치를 포착하고 구현해 낸다.

폭포 너머의 기이한 기운으로 가득한 공명의 화면 속에서 발산하는 청아하고 맑은 소리와 숭고한 정신의 울림을, 영혼의 소리를 담아낸다. 폭포는 물의 중력에 의해서 곧게 떨어지며 곧은 소리를 낸다. 폭포의 곧은 소리는 죽비처럼 내 가슴에 내리 꽂히는 영혼의 울림이며, 언제나 내 자신을 깨우는 숨소리이며, 삶의 에너지가 되고 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줄기는 처마 끝의 낙수처럼 소소하지만, 단단한 바위를 뚫어가듯이, 폭포는 위대한 힘이 되고,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고매한 정신이 되어가는 것이다.


- 송필용(1959- ) 전남대 및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학고재갤러리, 이화익갤러리 등 개인전 17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 작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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