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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흔적(Sheddings)

최수앙

Sheddings, 2014, 161 x 76 x 216cm, Mixed media, Vitrine, Steel and Lighting Fixture


원고를 의뢰 받았다.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작업실 이사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소위 ‘실무’라 불리는 현실적인 일들을 하나씩 해치워 온 터라 짤막한 에세이마저 생경한 느낌이었다. 부담스러운 마음에 며칠 동안을 말장난 같은 글들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그냥 편한 마음으로 내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내 작업의 맥락에 대해서 간단히 끄적거려 보기로 했다.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주로 했던 작업은 인체 조각이다. 좀더 세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회 현상이나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에 대한 생각을 정교한 표현으로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었다. 사실적인 인체 조각이라는 물리적인 틀에 몇 가지 단서를 넣고 크기나 형태에 변형을 주어 의도를 암시하고, 관람자에 의해 해석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고전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편적 시각에서 보면 사람은 정신 혹은 영혼과 물리적 신체로 인식한다. 나의 작업은 그러한 이원론적인 의미에서 관객에게 전달되고 감정이나 기억을 상기시킨다. 신체와 꼭 닮게 제작된 물질에 체온이나 핏기를 연상시키는 색채를 칠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관객에게 그 인체가 풍기는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인가 내 작업의 주제가 적절했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은 작위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갑갑할 정도로 내 머리 속을 차지했다. 그래서 몇 가지 변화를 갖기 시작했다.


Sheddings, 2014, 161 x 76 x 216cm, Mixed media, Vitrine, Steel and Lighting Fixture(Detail)


수년간 관습처럼 지속되어오던 작업과정이 결과물을 예상치의 범주 안에 머물게 한다는 생각에서 과정부터(작업공정)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Sheddings>(2014)이다. 이 작업은 그 동안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석고 원형이나 실험을 위해 제작된 것들 또는 제작과정의 오류로 실패한 조각들 등)들을 유리관에 단지 넣어놓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만들어진 조각들을 손이 가는 데로 하나씩 쌓아 올렸다. 각각의 모습이 구체적인 신체 부분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온전한 형상도 채색이 되어 있지도 않은 재료 그대로의 상태로 놓여져 있기에 일일이 설명이 필요 없는 상태였다.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물리적인 신체 그 자체가 물질 그대로 놓여진 셈이다. 정신이나 영혼 또는 감정이나 기분을 연상시키는 어떠한 요소도 없는 물질 그대로의 신체들 말이다.

사회현상은 특정한 공간에서 수 많은 신체들의 기능과 행위들로 이루어진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나의 공간에서 벌어질지 기대해본다.


- 최수앙(1975- ) 서울대 조소과, 동 대학원 졸업. 프랑스(2009, 2010), 싱가폴(2013), 벨기에(2014), 중국(2014)에서 개인전. 성곡미술관 2010 내일의 작가 선정, 2014 김세중 청년조각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미술은행, 코오롱문화재단 작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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