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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숭고, 역사와 기억의 간극에서

한성필

많은 사람들은 흔히 사진은 매체적으로 회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상호비교를 한다. 하지만 본인은 사진의 궁극적인 성격은 회화보다는 오히려 조각과 더 흡사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줄곧 해 왔다.
물론 전통적인 조각은 쇠나 돌, 혹은 나무와 같은 물성을 물리적으로 자르고 붙이고 다듬는 매체로서 최종적인 결과물은 사진과 판이하게 보인다. 하지만 사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시공간을 카메라와 저장매체를 통해 ‘현재를 과거로 단절’하고 ‘추상적인 공간을 기억의 정체성의 장소로 변이’시킨다. 즉 사진은 이미지라는 평면을 이용해서 ‘시간과 공간을 다시금 재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작가의 시점을 만드는 극도의 개념적인 조각 매체의 성격을 지닌다. 카메라를 통해 재현된 시간과 공간은 사실의 기록인 동시에 가장 사실 같이 보이는 허구인 이유 또한 이 때문인 것이다.
본인의 버킷리스트의 1, 2 순위였던 북극권과 남극권을 최근 사진과 비디오 작업의 목적으로 두 곳 모두 다녀올 수 있는 행운의 기회가 있었다. 평소 본인이 가졌던 이 두 곳의 특별한 관심사는 극지방에서 보여지는 대자연의 장엄함과 그 이면에 숨어있는 역사와 현실의 간극 때문이다.
흔히, 우리들에게 남극과 북극의 이미지는 극한의 추위와 함께 눈과 얼음으로만 황량하게 뒤덮여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고정된 극지의 이미지는 우리가 어려서 읽었던 위인전이나 동화책에 삽화와 함께 서술된 북극과 남극의 정복에 대한 고난과 역경에 대한 기억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Antarctic TACET 10, 2014, Archival Pigment Print, 122cm x 178cm


Arctic TACET 7, 2013, Archival Pigment Print, 122cm x 187cm


하지만 북극은 16세기 네덜란드 탐험가 바렌츠가 스발바르제도를 발견한 후 이곳에서는 바다 전체가 핏빛으로 물들 만큼의 수많은 고래가 살육되었고, 마침내 씨가 마르기 시작하였다. 결국 18세기에 제임스 쿡 선장이 남극을 발견한 후 북반부의 수많은 고래 사냥꾼들이 몰려와 전세계 고래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남극의 마스코트인 펭귄과 물개들까지 수십만 마리가 도살되었던 역사가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도살된 수 많은 극지의 동물들은 식용뿐만 아니라 화장품, 의약품, 패션산업, 윤활유 등의 인간들의 편리를 위해 사용되었다. 심지어 석유나 전기가 우리 생활의 필수적인 에너지원이 되기 전인 17, 18세기에는 고래 기름으로 만든 등잔과 양초는 물론 등대와 가로등의 불을 밝히는 기름으로 사용함으로써 어둠으로의 해방과 동시에 산업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20세기 북극에서 발견된 어마한 양의 석탄은 극한의 동토의 땅에 광산 개발의 붐이 일어났고, 최근에 이르러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드러나는 북극과 남극에 매장된 수천억 배럴의 석유는 메이저 정유 회사들의 유정(油井) 개발을 위해 마치 미국 서부시대의 ‘골드러시’와 흡사하게도 수많은 인력과 자본이 투자되고 있다. 끝없는 부와 에너지를 위한 탐험의 욕망들이 잠재적으로 투사되어 있는 극지의 모습은 과거 역사에서 돈과 명예를 위해 극지 탐험을 나섰던 욕망의 기억도 함께 중첩된다.
혹독한 추위와 미지의 위험을 극복해야만 갈 수 있는 ‘금단의 영역’이었던 극지는 과거 역사의 고래잡이, 광산 개발, 극점 정복을 위한 선구자들의 혹독한 대 자연과 맞선 도전과 투쟁, 심지어는 숭고한 희생까지 감수했었던 그들의 노력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되었다. 이를 통해 21세기의 극지는 더 이상 우리의 상상 속에만 머무는 공간이 아닌 개인들에게는 자그만한 용기를 가지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숭고한 자연풍경을 지닌 매력의 장소이며 국가 간에는 자원과 에너지 개발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처럼 대자연의 숭고미로 보여지던 극지 풍경의 이면에는 과거 기억과 흔적의 충돌 및 접점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이다.
대자연의 숭고로 대표되는 극지방의 풍경 속의 이면에는 역사적 기억과 현실의 흔적이 잠재되어 있고, 사진과 영상의 재현을 통해 ‘시간이 변이’되고 ‘공간이 단절’된 이미지로 우리들과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 한성필(1972- ) 중앙대 사진학과, 영국 킹스톤대 및 런던디자인미술관 공동 석사(MA)과정 프로그램 - 큐레이팅 컨템포러리 디자인 졸업. 현실과 복제, 그리고 재현의 관계를 보여주는 파사드 프로젝트(Façade Project)로 국내외 주요 미술관, 공공프로젝트, 비엔날레 등 전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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