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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르콩소르시움아트센터 개관 40주년 준비하는 김승덕 공동 디렉터

김달진



프랑스 디종에서 1977년 책방 2층 작은 공간을 빌려 시작한 르콩소르시움(Le Consortium)아트센터는 신디 셔먼, 리차드 프린스, 다니엘 뷔렌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유럽 최초의 전시를 열었을 뿐 아니라, 출판사와 영화사를 함께 운영하는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전위적 기관이다. 40주년 행사를 준비 중인 김승덕 공동 디렉터를 만났다.

Q. 르콩소르시움아트센터에 합류하게 된 과정은?
A. 르콩소르시움에 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1997년 피에르 위그 작가 전시 오프닝 디너에서 였다. 유럽에서도 유명한 미술과 음악 후원자 프랑수아즈 빌라랑 옆자리에 앉았는데 콩소르시움에 관해 많은 얘기를 하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로선 처음으로 듣는 이름이었다. 미술계의 중심 선상의 기관도 모르냐는 의아한 표정으로 르콩소르시움의 창립멤버인 프랑크 고트로 관장을 소개해 주었다. 일주일 후 정식 편지교환과 함께 기차로 한 시간 반 떨어진 디종의 르콩소르시움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본 전시가 우고 론디노네의 개인전이었고, 겨울이었는데 주변에는 카페나 앉을 곳도 쉴 곳도 없고 난방도 없는 싸늘한 수도원 같은 분위기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모든 비용은 전시와 작품제작을 위해 쓰이기에 다른 여유가 없었다 한다. 이때부터 이들과 프로젝트를 하나씩 함께 시작했는데 시기적으로 내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국제적인 작가들이 디종을 찾아 실험실과 같은 개념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주로 디죵에서 만들었다. 90년 말 내가 합류한 시점에서부터 쿠사마 야요이 전시 등 외부로 순회 전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퐁피두 미술관 초대로 르 콩소르시움 컬렉션 전시가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외부 진출을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국제적인 전시도 본격적으로 기획하면서 2000년부터는 국제전시 기획디렉터로 합류하게 되었다.  


르콩소르시움 입구


Q. 르콩소르시움의 조직구성과 내년 40주년 행사의 내용은?
A. 1977년 자비에 두루우와 프랑크 고트로가 콩소르시움의 창립 멤버로 시작, 82년에는 600㎡ 디종 중심가로 옮긴 후 에릭꼬리아라는 또 한 명의 지도자가 있었으나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지고, 89년엔 양조장 공장 으로 쓰였던 두번째 공간을 개조 전시장으로 함께 운영하며 '위진(Usine)' (프랑스어로 공장)이라 불렀다. 이때 한세대 젊은 에릭 트롱시가 95년 디렉터로 합류했다. 2011년에는 위진 주변의 공간을 넓혀서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이 디자인한 3000㎡의 새공간과 함께 르콩소르시움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게된다. 동시에 2010년부터 브라셋 기반의 안퐁테니와 파리기반의 스테파니 무아동도 그리고 이 시점에서 나도 협업 공동 디렉터로 르콩소르시움에 합세했다. 
실제로 르콩소르시움의 건물 조직이 커지면서 공간을 지키는 가드도 더 고용해야 한다는 이슈들이 떠 올랐을 때 우리가 필요한 것은 건물 지키는 사람보다는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더 필요하다는데 동의하여 지금은 6명의 디렉터가 함께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자유롭게 미래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르콩소르시움이 세워진 77년은 퐁피두센터의 창립과 같은 해기도 하다. 그래서 3월에 꾸며질 르 콩소르시움/퐁피두 크로싱 창립 전시에는 콩소르시움에서 1990년에 기획되었던 ‘온 카와라&알베르토 자코메티:양심’ 전시로 항상 회자되어 그해의 최고의 전시상을 받기도 했던 전시다. 물론 나도 그 전시를 못 봤고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서만 상상해온 전시인데, 퐁피두에서 자코메티 조각을 빌려주고 콩소르시움 수장품 중에 온카와라 데이트 페인팅으로 이 전시를 다시금 보게 될 것이다. 2003년 리옹비엔날레 때 콩소르시움이 소개한 로드니 그레이엄의 눈 내리는 타이프 라이터 작품 역시 그 기회에 퐁피두 켈렉션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엮인 인연들의 작품들을 모은 전시들이다. 이 전시에는 콩소르시움이 한스하커에게 커미션을 주어 제작한 1986년 작품 <Les Must de Rembrandt>  역사적인 작품도 다시 보일 예정이다. 남아프리카 다이아몬드 채광에 실태를 보여주면서 카르티에 보석사를 비판하게 됐는데 작품이 퐁피두그룹 전시에 출품되자, 퐁피두 재정지원 커미티의 중요 멤버 중 한사람(카르티에 회장)이 작품을 못보이게 압력을 준 스캔들의 작품이기도 하여 두 기관이 함께 나눈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르콩소르시움 내부전경


Q. 프랑스에서 한국미술에 대한 평가는?
A. 프랑스에서는 미술계보다 영화, 그리고 뛰어난 정명훈 지휘자를 비롯 음악계에 더욱 알려진것 같다. 한국이라는 집합적 성격으로 미술계를 평가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이우환, 그리고 다음 세대인 김수자, 이불, 양혜규 같은 작가도 한국 미술을 대표하기보다는 각 개인의 작품이 먼저 얘기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카소나 로스코와 같은 작가를 얘기할 때 그들의 문화적 배경은 무시할 수 없으나 스페인 미술과 미국미술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Q. 예술경영지원센터 그리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같은 국내기관들과의 업무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A. 예술경원지원센터(예경)은 작년에 큐레이터 워크숍 요청이 콩소르시움으로 와서 알게 되었는데, 우리 기관에 대한 연구와 워크숍 준비를 아주 잘해온 기관이라 좀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기관을 통한 큐레이터 프로그램은 꽤 있는 것 같은데 형식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될만한 결과는 항상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접촉한 기관에 대한 내부적인 정보와 실질적인 연계로 얻을 수 있는 세부적인 리서치가 부족해서. 가벼운 해외여행 연수정도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예경의 경우 관리체재의 문화기관이지만 몇명의 젊은이들이 애정과 비젼을가지고 열심히 뛰는 모습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올해는 세 개의 국제 비엔날레 및 안양까지 4개의 국제 행사가 열리고 있으니 그 시기에 맞춰 국제 심포지엄을 구성 할 수 있는지 요청이 왔다. 특히 이번 비엔날레 커미셔너들은 교육, 심포지엄, 그룹 포럼 등에 평소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들이라, 같은 시기에 또 다른 심포지엄을 기획하는 것엔 별 의미를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르 콩소르시움이 찾아가는 워크숍을 제안하여 예경과 공동으로 기획, 진행하게 되었다. 문화의 마스터 플랜닝 이라는 테마를 정하여 문화 관련해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건축, 디자인 관련 기관, 문화기관, 교육기관 등의 전문인을 외국에서 초대하였고 한국에서도 건축 관련, 대학 기관, 기업 문화 관련 기관들의 사전 정보를 양쪽에서 갖고 만남이 이루어진 시점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심도 있는 미팅을 갖고자 기획했다. 열려지고 기존의 틀과 좀 다른 이런 미팅, 그리고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인들과 만남 속에서 공통주제로 나누는 얘기들은 매우 긍정적인 효과로 흥미로웠고 내용 있는 진정한 네트 워크로 구체적인 프로젝트 얘기들이 나온 것은 긍정적인 결과로 평가된다. 다만 일회성이 아닌 연속성의 미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14년 말부터 공용 공간 예술 감독으로 프랑크 고트로와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5.18 광장이 있는 아문단은 민주주의의 요람지로 상징적으로 지어졌고, 그것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곳은 큰 가능성을 지닌 아시아 문화 기관으로 커다란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많은 사연과 많은 사람이 거쳐 가면서, 사연도 많았지만, 결국 문화 기관은 애정과 비전을 가진 문화계 수장이 성격을 만들고 하나씩 만들어가며 자리를 잡을 것이다. 아시아라하면 이미 광주를 벗어난 국제적인 성격을 이미 그 안에 포함하지만, 그보다, 광주시민들이 아끼고 귀하게 키워서 자랑스러운 문화기관으로 기반을 잡아야 더 큰 그림으로 외부로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관리체제 속에서 문화의 실질적 내용을 얘기할 수 있는 구조는 부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력 있는 전문인들이 초기에 예술감독단으로 구성되었으나 매번 바뀌고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건물은 이미 지어졌고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좋은 기능으로 역할을 할 그때가 언젠가는 곧 오기를 기다린다. 

문화계에서 자주 거론되며 부딪치는 관리 체제의 서류처리 업무의 일들은 한국에만 국한된 현실이 아니다. 나라와 연결된 문화 사업들은 중동, 유럽, 할 것 없이 관리 체제 속의 복잡하고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다만 윗선의 결정권자는 따로 있고 서류를 진행하는 실무자들에게 거의 모든 책임이 지워져, 일의 실지 내용을 연구하고 상의하는 것은 거의 상상도 못 하고, 하자 없는 서류를 만들기에 연연하기가 대부분이다. 근본적인 조직상의 문제를 진단하기 전에는 문화사업의 문화 내용을 들여다보기엔 아주 무관하거나 먼 얘기가 되기 쉽다.

Q. 그간 활동의 보람과 아쉬움이 있다면?
A. 기본적으로, 문화분야에서 자기 일을 한다는 건 축복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베니스 한국관을 비롯 국제 행사를 진행할 기회가 주어진 것도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한국은 외국보다 문화 분야에 많은 관심과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런데 문화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왜 필요로 하는지, 가장 기본 되는 질문을 각자가 할 필요가 있다.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을 열고 고정관념을 벗어나, 세상의 탁한 공기를 잠시라도 신선한 공기를 불어다 주는 이런 기능의 기본 인식이 없다면 이 많은 국제행사와 전시와 책자 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Q. 앞으로의 계획은?
A. 출판도 동시대 정신의 문화 전반의 실험 정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도구로 생각하여 1992년 프레스레알(les presses du réel) 독립된 출판사를 설립했는데, 내용의 방향이나 결정은 그곳 담당자와 르콩소르시움 팀이 함께 일한다. 미술, 미술사, 건축, 공연, 철학, 사회학 등 문화 예술에 공통분모를 갖고 있고 시대정신에 중요한 연구물이라 판단되면 출판하며 보통 1년에 30-40권 정도를 출판한다.
국제평론가협회(AICA)의 의뢰로, 올해 선정된 한국의 이일 평론가의 글을 우리 출판사에서 한글 모음글의 영어 번역본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단색화에 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당시 한국 미술사 배경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외국어로 제대로 소개된 한국 현대 문화 관련 연구서가 매우 빈약하다. 한국 문화의 인문학적 배경과 한국 현대사 등을 제대로 알릴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 출판사도 건축 분야 등 나름 연구를 진행 중이다


- 김승덕 파리 팔레드도쿄 프로그램 자문위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공 및 공간디자인 예술감독. 파리 퐁피두센터 객원큐레이터, ‘플라워 파워’전시(2004, 릴), 발렌시아비엔날레(2005),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2007), 쿠사마 야요이 순회전(2008-9), 린다 벵글리스 순회전(2009-11) 등 공동 커미셔너, 카타르 도하 도시계획 자문위원(2011-13),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2013)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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