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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성산 일출봉 신선은 어디로 갔을까

최열

이랑에 보리 엎어져 찢어지든 말든     從敎壟麥倒離披

언덕에 삼베나무 양쪽 가지 돋든 말든   亦任丘麻生兩岐

청자와 하얀 쌀 가득 실어오는      滿載靑瓷兼白米

북풍 타고 오는 배만 바라보네      北風船子望來時


- 이제현(李齊賢), <소악부(小樂府)>, 『익재난고(益齋亂藁)』 



그 언제던가. 그곳에 올라 하늘과 바다, 구름을 보았다. 산으로 이루어진 성이라고 해서 옛날엔 산성이라 불렀던 그곳 성산이다. 임제(林悌, 1549-1587)가 <남명소승(南溟小乘)>에 다음처럼 그려두었다.


“성산도(城山島)는 한 떨기 푸른 연꽃이 바다 물결 가에 나온 듯한데 그 위에는 돌 절벽이 빙 둘러 있어서 마치 성곽 같다. 그 속은 대단히 평탄하고 넓으며 풀과 나무가 나 있다. 그 아래로는 바위 봉우리가 기괴하게 서 있는데 더러는 돛대와 같고, 또는 천막 같고, 또는 휘장 덮개 같고, 또는 새나 짐승과 같아 만가지 천가지 모습을 이루 다 기록하기 어렵다.”


화가 김남길은 <성산관일(城山觀日)>에서 성산을 물속에 뜬 네모 모자 또는 상자처럼 그렸다. 김남길은 산 아래쪽에 성벽이 띠를 두른 것과 같이 그렸는데 그 성 높이가 무려 9,000척이나 된다고 하였다. 그 성곽을 통과하면 진해당(鎭海堂)이 있고 바로 뒤쪽부터 급격히 치솟아 오르는데 화가는 봉우리를 여러 겹 쌓아 올린 것처럼 설정하고 꼭대기마다 나무가 자라고 봉우리 끝만 어둡게 칠하면서 봉우리 사이사이는 밝게 두어 깊이를 살렸다. 끝내 그 모습이 세상 어디에도 볼 수 없을 기괴한 형상으로 나타나고야 말았다.『남사록(南槎錄)』에서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그 이상스런 모습을 “짐승이 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하다”고 비유하고서 옛날엔 사람이 드나들지 못해 벼랑을 잡고서야 그 신선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였다. 이곳은 제주의 동쪽 끝 영주 제일경으로 성산출일(城山出日)의 땅이니 그림 왼쪽 바다 끝 붉은 태양이 눈부시게 피어오른다. 성산 꼭대기 봉수대가 있는 성산망(城山望)에서 차일을 쓴 이형상 목사가 바다를 뚫고 차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 그대로 1702년 7월 13일 아침의 성산출일이라, 하지만 아직 나는 성산에서 해 뜨는 바다를 못 보았다.


성산에는 등경석(燈擎石)이란 바위가 있는데 바위 위에 또 바위를 얹은 모습으로 돌 촛대라 한다. 돌 촛대는 설문대할망이 등불을 켜던 돌이었는데 너무 얕아 바위 하나 더 얹은 데서 비롯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비롯한 돌 촛대는 삼별초(三別抄) 김통정(金通精, ?-1273) 장군이 성산에 성을 쌓을 때 이야기로 바뀌었다. 부인이 바느질 할 적에 불빛이 너무 낮아 불편하다고 하자 장군이 불을 켜던 바위 위에 또 바위를 얹혀 놓아 두 개의 돌 촛대가 되었다고 한다. 정부군과 마지막 전투에서 항복 없이 장렬한 죽음을 선택한 김통정 장군이 죽은 뒤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탐라요(耽羅謠)>를 읊어 이후 제주 사람들의 고통을 노래했는데 눈물만 흐를 뿐, 성산의 신선은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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