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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금원에서 태평성세를 꿈꾸다

최열

녹음방초 우거지니 날은 여유롭고      綠陰芳草日悠悠
옥을 뿜듯 폭포는 아홉굽이 흘러가네        噴玉飛泉九曲流
소요정에 한가로이 앉아 바라보니             閑坐逍遙亭上看
마음 맑고 생각 깨끗해 시름 씻어버리네   心淸意潔滌憂愁

- 순조, <소요정(逍遙亭)>



중국 북경의 이화원(頤和園), 일본 교토의 가쓰라리큐[桂離宮]와 더불어 동양 3대 정원의 하나인 창덕궁 후원의 금원(禁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다. 그래서 정원 꾸미기를 그렇게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이곳 후원을 비밀의 정원 다시 말해 비원(秘苑)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 금원에서 가장 높은 곳 봉우리를 향해 뒷켠으로 올라가면 냇물과 정자들이 어우러진 공간이 나타난다. 바로 이곳이 옥류천(玉流川) 정원이다. 이곳에는 개울과 샘물, 폭포가 흐르고 괴석과 돌다리며 갖은 정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청의정(淸漪亭)과 태극정(太極亭) 사이로 옥류천이 흐르는데 그 아래쪽에는 술잔을 띄워 빙글빙글 돌아가게 파 놓은 바위 소요암(逍遙巖)이 있고 바로 그곳에 소박한 유상곡수(流觴曲水) 폭포가 떨어지도록 하였으며 바로 옆에 소요정(逍遙亭)을, 부근에는 농산정(籠山亭)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금지된 정원’이라서 흔히 볼수 있는 풍경도 아니었고 또한 궁궐 안 깊은 곳이었기 때문에 여느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 적도 없다. 따라서 <동궐도(東闕圖)>의 부분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이번 칸옥션에서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 김희겸(金喜謙, 1710 무렵-1763 이후)의 <옥류천>은 그곳을 그린 유일한 실경이다. 아마도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던 김희겸이 어떤 기회를 얻어 그곳에 가 보았었고 그 사실을 아는 누군가가 그려달라 청했던 듯 하다. 

그림에는 초가지붕을 올린 청의정이 보이는데 바로 그 앞에 논에서 자란 벼로부터 수확한 짚을 얹었다고 한다. 농본국가임을 과시하는 상징이라 할 것이다. <동궐도>를 보면 바로 그 청의정 앞마당처럼 보이는 모습의 논이 있는데 김희겸의 그림에는 논이 없다. 화폭을 구성함에 논이 불필요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소요암과 유상곡수 폭포다. 화폭 중단에 검고 커다란 바위가 소요암이고 그 아래 마치 아파트처럼 각이 진 바위 절벽이 유상곡수 폭포이며 폭포 바로 앞에 있는 정자는 소요정이다. 

순조대왕(純祖大王, 1790-1834)은 이곳의 ‘소요정이야말로 인간 세계에서 비할 데 없는 유달리 뛰어난 곳’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어 노래하기를 “그 앞으로는 술잔을 띄우고 시나 노래를 읊고 부르며 노는 유상곡수가 있는가 하면 뒤로는 우거진 숲과 밋밋하게 뻗은 대나무 숲이 푸르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한가로이 거닐며 이곳 경지츨 즐기노라면 그윽한 정취에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한결 상쾌해진다”고 하였다. 순조는 홀로 누리기 아까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신하들을 불러 다음처럼 했다. “마침내 여러 어진 선비들이 이곳 아홉 굽이 물이 흐르는 구곡지수(九曲之水)에 와서 편을 갈라 앉아 잔칫상을 벌여 놓고 서로 회포를 풀며 시도 읊으니 오늘에야 비로소 잔치 벗이 귀한 것을 알 수 있구나. 비록 위엄을 갖추고 예절이 엄숙하지만 술 한 잔에 시 한 수라 마음과 아담한 멋이 서로 통하니 흡족하도다.” 그렇다. 세상을 경영하는 통치자가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그렇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통치자들은 저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체제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저 독재자들이 만들어 놓은 대통령의 모습은 어딘지 괴물스럽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로도 통치자의 모습은 무겁고 어둡다. 왕조차도 저렇게 여유로이 소통하는데 대통령 따위가 꽉 막힌 불통이니 도리가 없다. 지금의 청와대는 예전부터 버려진 땅이었다. 북한산의 험악한 기운이 몰려 내려와 모이는 늪지대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야 마는 시궁창이었던 게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의 왕들은 사색에 빠지거나 노닐 때면 경복궁 후원인 청와대 터가 아니라 경복궁에서는 경회루와 향원정을 거닐었고 창덕궁에서는 이곳 금원의 소요정을 노닐었던 것이다.

그렇다. 매번 되풀이하는 대통령의 비극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은 문득 이곳 금원에 들러 소요정에 앉아 역대 왕들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숙종도, 정조도 이곳 소요정을 읊었는데 태평성세를 꿈꾸는 순조의 가락이 유난스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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