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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남산자락에서 백악산 도깨비의 하산을 꿈꾸며

최열


알겠구나 산속 도깨비와 물속 요정이             應知山魅水妖精
어리석은 백성 홀려 장난 쳤음을                    妄引癡氓弄變幻
잠깐사이 도깨비굴로 들어가니                     須叟閃轉魍魎窟
작은 티끌에 눈이 어지러워 천지가 뒤바뀌네  眯目微糠天地換

- 이익(李瀷, 1681-1763), <도원행(桃源行)>,『 성호전집(星湖全集)』



강세황, <남산과 삼각산> 선면, 20.7×43㎝, 종이, 개인소장


1744년 32살의 젊은 날 강세황(姜世晃, 1713-91)은 한양 생활에 흥미를 잃어 처가가 있는 경기 안산(安山)으로 옮겨갔다. 여기서 더없이 행복했던 것은 위대한 스승 이익(李瀷, 1681-1763)이 안산의 호수 성호(星湖)에서 학문을 베풀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 성호문하에 걸출한 인물이 즐비하여 안산은 그야말로 밤하늘 별과도 같은 재사들의 집결지였다. 눈부신 안산15학사(學士)와 밤낮으로 친교를 맺고서 예술의 심연을 노닐던 강세황은 그러나 번화한 한양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예조판서 집안의 귀공자로 자라던 시절 화려한 도시를 떠올리곤 하다가 문득 붓을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남산과 삼각산>이 탄생했다. 그림의 풍경은 “교외로 나가 산 지 어느덧 오래지만, 아직 한양 그리는 마음 지니고 있어 남산과 삼각산을 때때로 집 뒤 언덕에 올라 바라본다네”라고 써넣은 그대로다.


도성을 받쳐주는 책상 같아서 한양의 안산(案山)이라 하는 남산은 웅장함과 부드러움이 뒤섞인 안정감으로 저 삼각산의 거칠고 힘찬 기운을 맞받아 조화로운 세계를 연출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삼각산과 남산 사이 광활한 터전에 사람이 번성하고 물화(物貨)가 쏟아지는 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삼각산이 너무 억센 탓이었을까, 200년이 흘러 일본과 청국에게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을 겪더니 500년이 흘러서는 아예 일본에게 안방 내주어 조선총독부가 들어앉았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두 번 모두 힘겨웠던 시절은 사십년씩 이었을 뿐 곧바로 국권을 회복할 수 있었으므로 이 또한 삼각산의 천병만마가 일어나 만주벌 독립군에 합세한 탓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국권 회복 이후 일어난 6·25전쟁은 무엇이며 분단은 또 어쩐 일이고 나아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저 전제주의 폭압과 군부독재의 공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삼각산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천년왕국 수도의 기운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만 베풀어졌던 힘이었던 모양이다.


안산의 예원생활 30년이 흘러 어느덧 18세기 중엽 예원의 총수로 군림하던 61살 환갑의 강세황에게 처음으로 벼슬이 주어졌고 곧이어 한성판관(漢城判官)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다시는 고향풍경 그리워할 일 없어 더욱 아름답고 훌륭한 삼각산이며 남산풍경 그리지 않았지만 늙어서 귀향하고 보니 삼각산이며 남산을 그토록 그리워했던 듯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그린 것이 바로 이 <남산과 삼각산>이다.


이 부채 그림에 나타나는 아래쪽 마을은 지금의 서울역 위쪽 회현동과 후암동을 거쳐 이태원으로 휘돌아 감기는 남산 아랫자락 어느 곳인데 화폭의 오른쪽 끝 밭두렁 윗켠쯤에는 삼성미술관리움이 있는 자리라 하겠다. 이 그림은 묘한 느낌인데 화폭을 절반으로 나누어 위아래가 너무도 다르다. 아래쪽은 봄날의 풍경이라 곱디고운 어린 시절 포근한 추억이 담긴 듯,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데 위쪽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하다. 아래쪽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평화로운 들판이 펼쳐지는 가운데 기와집과 초가집이며 밭과 길이 듬성듬성 자연스레 어울려있다. 사람 사는 마을 그대로다. 강세황에겐 번거로운 도시가 아니라 가고 싶은 고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쪽 삼각산은 날카로운 선을 구사하여 마치 만 마리의 말을 타고 쏟아져 내리 닥치는 천명의 군대처럼 거칠고 남산은 먹물을 듬뿍 뿌려 마치 철갑을 두른 공룡처럼 거대한 몸집을 하고서 아래쪽 사람 사는 마을을 호시탐탐 엿보는 모습이다. 그 두려움은 아마도 요즘 벌어지고 있는 백악산 자락 음습한 청와대에서 하산할 것을 요구하는 광화문 광장의 호령으로부터가 아닌가 싶다. 깊은 밤 부끄러운 나라 꼴 생각하며 성호 이익 선생의 『성호전집(星湖全集)』을 펼쳐보니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본뜬 노래 <도원행(桃源行)>의 한 구절이 머리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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