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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사일동에서 꿈꾸는 요순시대

최열

산 낙엽 그림인양 저자거리로 내닫아         一疊秋山落市邊

스산한 저녁 바람 성 머리에 나부끼고        層城日落散風煙

그윽히 살아 온 인적 드문 골짜기          幽居近壑人來小

나 홀로 국화꽃 꺾어 돌밭에 앉았네         獨採黃花坐石田


- 성수침, <저물녘 청송당을 거닐며(聽松堂晩步)>, 『청송집(聽松集)』


권신응, <북악십경 사일동(四一洞)>, 1753, 종이, 41.7 × 25.7 cm, 개인소장.


권섭은 북악십경의 하나로 사일동(四一洞)을 설정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게 어디인지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게다. 이미 알려진 한양 땅의 팔경, 구곡, 십경에도 없는 것이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한경지략』에도 나오는 이름이 아니다. 화폭에도 딱히 어디라고 가리키지 않는데 상단 오른쪽 봉우리에 ‘백악(白岳)’이라고 써 두었고, 하단 오른쪽 맨 아래에 ‘청람대(靑嵐䑓)’라고 써 두었으니 이곳은 창의문(彰義門)에서 발원하여 경기상업고등학교 뒷켠으로 흐르는 백운동천(白雲洞川) 계곡을 그린 것만은 틀림없는데 ‘사일동’이란 땅이름은 모르겠다. 짐작해보면 예부터 전해오는 도성의 다섯 명승(名勝)으로 1. 삼청(一三淸), 2. 인왕(二仁旺), 3. 쌍계(三雙溪), 4. 백운(四白雲), 5. 청학(五靑鶴)이라 하였는데 바로 저 네 번째 명승이라 일컫는 백운동을 한마디로 사일동이라 한 것은 아닐까 싶지만 모를 일이다.


그 땅에 살던 사람들 사이엔 그냥 있던 이름일텐데도 세월이 흐르고 사는 사람이 바뀌면 그렇게 사라지는 모양인데 누군가 알고 있던 이가 나타날지 말이다. 사일동이 곧 백운동이라면 사일동은 당연히 백운동천 계곡이다. 백운동천 계곡은 지금 시멘트로 덮어 주택가 길이라 그 어떤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자하문터널 입구 직전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길 방향이 바로 그 계곡인데, 지금 경기상업고등학교 건물 뒷켠 북쪽 일대에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바로 그곳이 아름다운 경치를 뽐내던 북악십경의 하나였던 것이다.


경기상업고등학교 건물 뒤쪽에 청송당 옛터라는 뜻의 ‘청송당유지(聽松堂遺址)’라는 글자를 새긴 바위가 남아있다. 그런데 이 바위가 있던 땅은 유란동(幽蘭洞)이라 불러 백운동 또는 사일동은 유란동 바로 위 북쪽이었다. 그러므로 유란동에서 눈을 돌려 북쪽을 보면 백운동천이 있고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백악산이, 서쪽으로 보면 인왕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경지략』에서는 유란동에 대해 다음처럼 썼다. “북악산 밑에 있다. 언덕 바위에 ‘유란동’이라는 석 자를 새겼다. 이 동네는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이 살던 곳으로 꽃구경하기에 좋은 곳이다.”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은 일찍이 조광조(趙光祖, 1482-1519) 문하에 나갔는데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를 포함하여 숱한 이들이 죽어 나가고 또 유배를 떠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처사(處士)의 길을 선택했다. 성수침은 이곳 유란동에 독서당을 짓고서 박상(朴詳, 1474-1530)에게 그 이름을 청하니 청송당(聽松堂)이라고 지어 주었다. 이곳에서 성수침은 두문불출하며 오직 『대학(大學)』과 『논어(論語)』를 읽으며 태극도(太極圖)를 베껴 천지조화의 근본을 탐구하였다. 성수침은 그러니까 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은거하는 재야산림이 아니라 도성의 번화한 시장 가까이에 있는 깊은 계곡에 은거하는 길을 선택한 성시산림(成市山林)이었다.


성수침은 그 뒤 중년에 이르러 벼슬을 거절하고 파주(坡州)로 들어갔는데 또다시 벼슬이 내려왔지만 끝내 거절했다. 평생을 학문에 빠져있어 별세할 적에는 장례마저 치를 수 없을 만큼 가난했으므로, 사간원에서 상소하여 국가에서 장례 비용을 지급해 주었다. 그의 사상은 조광조 일파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대의명분을 지키고 요순(堯舜)의 지치(至治)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아들 성혼(成渾, 1535-98)에게 계승되었다. 자하문터널을 드나들 적이면 성수침을 떠올리며 내 삶을 생각한다. 지난날 민주화와 사회변혁운동에 나섰다가 정계로 진출한 동료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일까. 가난하고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한 것일까. 아서라, 스스로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자들 아니던가. 깨우침에 이르고 보니 자신을 청은(淸隱)이라 하였던 성수침의 노래가 오히려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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