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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33) 정준모 / 이성적, 합리적으로 서두르지 말고

정준모

미술품에 대한 문화적 예술적 판단보다 경제적 셈법이 더 우세한 위치를 점하면서 미술품 감정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이는 배금주의가 낳은 비 정상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주거를 위한 목적보다 투자와 투기수단으로 인식되는 아파트 또는 부동산처럼 미술품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술품감정은 곧 위조수표 또는 위조지폐를 감식하는 일처럼 인식되고 미술품 감정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와 틀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너도나도 전문가 행세를 하며 나서고 인터넷 매체에 괴담 아닌 괴담, 추리소설을 연재하는 이들까지 속출하면서 미술사 기술의 중요한 축이자 틀인 동시에 미술품의 격과 미학적 가치를 논해야 할 미술품 감정이 단순하게 진위여부만을 따지는 지엽적인 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품 감정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실시하며 어떤 원칙을 통해 이를 결정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며 그 결과에 대해 사회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선 선례를 조사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 국제 감정가 협회(ISA, International Society of Appraisers)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총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참가하게 되었다.


총회는 토론토의 파크 하이야트 호텔에서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4일간 개최되었다. 첫날은 로얄온타리오 박물관(Royal Ontario Museum)과 코로나 보석상(Corona Jewelry Company) 그리고 바타 구두박물관(Bata Shoe Museum)을 방문하는 일정이었지만 필자와 한국에서 참가한 일행은 첫날 오후에 현지에 도착한 때문에 이 일정에 참가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토론과 세미나는 5월 1일부터 쥬디스 M. 마틴(Judith M. Martin)회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고 이후 3 섹션으로 나뉘어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컨퍼런스는 미술분야(Fine art)와 공예(ARC) 그리고 금속과 보석(G&J)분야등 3분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이것만 보아도 감정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미술품의 진위를 식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과 문화적, 창조적 활동의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발표의 내용도 매우 세밀하고 정교한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종이를 무게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적인 제지술을 익히고 이를 통해 공예품과 서책을 감정하는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는 것이었다. 물론 미술 분과에서는 사진을 다루었다. 내년에 개관예정인 라이어슨 갤러리와 연구센터의 연구원이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3,000여 점의 사진작품에 대한 시대별 유형별 분석과 도상의 해석 등 그간 연구를 통해 습득한 전문적인 정보를 감정가들에게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감정가들에게 전문연구자들의 지식과 연구 성과를 공유할 기회가 되었다. 금속과 보석분과에서는 30여 년간 이 분야의 컬렉터로 활동해 온 캐롤 탄넨바움(Carole Tanenbaum)이 자신의 컬렉터로서의 경험을 통해 실물이나 원작이라 해도 믿을 수밖에 없을 ‘가짜’ 이야기를 자료와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며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는 것이었다.


감정은 복합적인 자료와 지식을 필요로 한다
사실 감정가들이 활동하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만나게 될 감정대상작품들이 어떤 시대, 어떤 유형의 작품들을 만나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 다양한 장르와 시대 그리고 작가들을 모두 연구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이런 컨퍼런스를 통해 감정의 대상을 파악하고 나름대로 분석한 후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 전문적인 감정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도 감정가의 임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런 합리적인 생각을 만나면서 우리나라의 감정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유화건 수묵채색화건, 도자기이건 감정의견을 내 놓는 감정가(?)들의 무대뽀 정신을 떠 올리면서 낮이 뜨거워졌다. 이런 빡빡한 일정은 15년 만에 다시 찾은 토론토의 변한 거리구경한 번 제대로 할 틈을 주지는 않았지만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 미술품 가격감정과 보험의 문제라던가 캐나다 원주만격인 이누트 족의 미술에 관한 발표는 새로운 분야를 접한다는 접에서 새로웠다. 특히 5월 2일 열린 컨퍼런스에서 잭슨 폴록의 작품에서 그의 지문을 찾아내어 유명해진 미술품 수복 전문가인 피터 폴 바이로(Peter Paul Biro)와 결정학박사인 마리 클라우드 코베일(Marie-Claude Corbeil)의 ‘과학과 예술의 만남’(Science Meets Art_)이라는 제목의 발표는 과학이라는 말을 무조건 믿고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과학자나 미술품 수복자는 감정가들에게 과학적인 데이터를 제시할 뿐, 그것을 가지고 스스로 감정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면 분석은 자신의 영역이지만 감정은 자신의 분야가 아닌 때문이다. 또 감정은 과학적 분석 데이터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자료와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과학적인 데이터는 감정가들의 판단을 돕는 극히 일부분인 하나의 자료인 때문이다.” 피곤하고 힘든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의참가는 한국의 감정문화 정착과 증진 그리고 감정가 교육에 많은 것을 배우고 응용할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향후 ISA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할 것을 회장 쥬디스와 약속한 것도 큰 성과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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