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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제20회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학술대회

이현경

종교미술과 사회변동

지난 5월 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종교미술과 사회변동’이라는 주제로 동·서양과 시대를 관통하여 전통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종교적 성향, 즉 기독교, 불교, 도교와 관련된 미술이 이들을 주도했던 당시 지배층과 그들이 향유한 사회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총 6편의 발표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번 학회는 ‘사회속의 미술’이라는 미술 담론의 현대적·학적 풍토를 잘 보여주었으며, 이를 정치하게 보기 위한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ity)가 반영되어 미술사 밖의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또한 학회 마지막 축사에서 ‘당시대의 미술이 당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문명대 교수의 발언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시간이었다.


양은경(부산대)씨는 ‘양(梁) 무제(武帝)시기 불교미술과 사회변화’에서 중국 남조 불교에서 가장 번성을 누린 시기로 양대를 주목하여,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황제보살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무제 시기의 사회 풍토와 불교미술의 관련성을 살펴보았다. 상업이 활성화된 남조에서 양 무제의 활발한 불사(佛事)활동으로 인한 동전(銅錢)의 고갈, 자비를 강조한 무제로 인한 형벌의 해이해짐, 실질적 정치를 중하위 층에 맡기게 되어 상층 귀족들의 향락과 사치의 조장 등은 불교에 집중한 결과 생긴 사회 변화이며, 귀족 특권의 강화로 인해 문란해진 사회 기강과 사치 풍토는 다시 불교 미술에 영향을 미쳐, 화려하고 장식성 강한 사찰과 불상 양식을 낳았으며 당시 귀족의 옷차림이 그대로 포의박대(褒衣博帶)식가사(袈裟)로 성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강병희(한국외대)씨는 ‘고려 전기 사회변동과 불탑: 11·12세기의 불탑의 북방적 요소’에서 고려 전기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대외 교섭과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강조하고 이것이 고려 사회와 미술을 이해하는데 큰 줄기가 됨을 설명하였다. 특히 불탑에서는 고려 전기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요(遙)나라 양식이 크게 지배하였는데, 당시 요의 불탑은 목탑을 모방한 다층의 전(塼)·석(石)탑이 유행하였고 이러한 다층탑은 상층부를 적층시킬 수 있는 평좌(平坐)구조를 가졌다. 고려 현종대를 전후한 시기에 거란인 귀화와 관련하여 고려 석탑에도 이러한 요나라식 평좌 구조가 별석 받침으로 나타나며, 서역과 가까운 지리적 환경을 가진 요나라의 영향으로 각종고려 불탑의 천개(天蓋)와 문양등에서 역적요소가 보임을 설명하였다.


양정무(한국예술종합학교)씨는 ‘과시적 소비 또는 르네상스 종교미술’ 에서 경제적 번영이 예술적 번영을 야기시킨다는 기존의 시각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르네상스 시기는 호황기였던 중세에 비해 장기적인 경제 불황 속에 부의 양극화가 나타났으며 그 상층에 부를 향유한 신흥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예를 지향하였고, 이러한 풍토는  종교 미술을 상품화하여 소비 가치로 보는 시각으로 정립되었으며, 현대의 우리가 핸드폰을 바꾸듯 일종의 과시적 소비가 싹트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경제적 하층부에서는 유럽 인구의 1/3을 앗아간 흑사병으로 죽음의 공포 속에 간절해지는 종교적 의존도가 높아면서 값싼 종교 미술의 대중화가 이루어졌음을 살펴보았다.


신광희(동국대)씨는 ‘조선조 명종대의 사회변동과 불화’에서 유교를 정치적 모토로 삼았던 조선조에서 명종(明宗)의 어머니이자 열렬한 불교신자였던 문정왕후(文定王后)에 의해 발원된 상당수 불화의 높은 회화적 가치를 논해보고, 이러한 왕실 불화로 인한 궁정화풍이 조선 중기 새롭게 등장하는 민간화풍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또한 주로 비단과 금니(金泥)를 사용했던 문정왕후 발원불화의 이면에는 선왕들의 추복을 기원하기 위해 궁궐 안에 지어졌던 불당인 내원당(內願堂)의 개념이 명종을 위해 전국 각지의 기복 사찰로 확대되어 왕실재정 확보의 수단이 되었으며, 불화의 수요 증가와 화풍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설명하였다.


고종희(한양여대)씨는 ‘가톨릭 개혁 미술과 바로크 양식의 탄생’에서 루터를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개혁 운동이 있었던 16세기 말, 서양미술은 사회 권력이 지나치게 통제할 때 예술가의 창작 의지가 저하된 매너리즘 시기로 여겨져 왔지만, 오히려 이러한 종교 개혁을 통해 새로운 종교 미술에 대한 지침서가 등장하고, 이에 따라 신앙을 자극하기 위한 구체적 표현이 등장하여 바로크 양식의 모태가 되는 긍정적 측면을 살펴보았다. 깊은 영성을 발현하기 위한 정밀한 소묘술은 자연주의적 성향으로 이어졌으며, 화가에게 설교자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사소한 디테일 보다 드라마틱하고 기념비적 성향을 갖게 되었음을 설명하였다.


조인수(한국예술종합학교)씨는 ‘중국 원명대의 사회변동과 도교 신선도’에서 원대의 신선도는 엄숙하고 신비한 도상을 위주로 종교적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명대의 신선도는 기복(祈福)과 장수(長壽)의 세속적 염원과 결합되어 실용적 기능과 함께 쾌활하고 일상적인 신선의 도상이 성립되었다고 언급하였다. 이는 원대의 경우, 칭기즈칸의 정치적 성향에 부합한 전진교(全眞敎)의 도교적 지침이 탈세속적이며 금욕과 자기 절제를 강조하는 것에 관련하며, 명대의 경우는 주원장의 전제정치로 인한 종교 탄압으로 도교적 범위가 위축되고, 정치적 권위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종교적 상징성이 순화되어 현실적 의도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였다. 각 발표 사이에는 김혜원(국립중앙박물관), 엄기표(단국대), 전동호(서울대), 이승희(홍익대), 김정락(김종영미술관), 박은화(충북대)씨의 질의가 발표순대로 있었다.



- 이현경(- ) 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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