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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국미술평론가협회 세미나

서성록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세미나

_박수근 회화에 대한 비평적 성찰



한국미술평론가협회는 지난 5월 24일(토) 박수근화백의 회화세계에 관한 세미나를 강원도 양구에서 가졌다. “박수근 회화에 대한 비평적 성찰”이라는 주제로 근래의 상업적•통속적 흥미에서 벗어나 박수근 회화의 실질적 내역을 점검하였다. 이날 세미나에는 『박수근』의 저자 오광수 선생과 『박수근:사랑이 숨쉬는 공간』의 저자인 필자, 그리고 박수근의 회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공주형씨, 박수근미술관의 학예연구사 최형순씨가 발제자로 나섰다. 우리 미술에서 차지하는 박수근 화백의 위상, 정신적 측면, 공간적 측면 그리고 기법적 측면을 두루 짚어보았다.


오광수 선생은 주위의 도움 없이 얻어낸 눈부신 성과에 주목하였다. 일제 시대에는 김종태, 김중현, 윤희순, 이승만, 이봉상 등 독학파가 있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개성적인 세계로 나간 화가가 박수근이라는 사실이다. 사숙한 미술가도 없고 어떤 미술 정도를 습득하지 못한 처지였지만 ‘꾸준함의 미덕’을 살려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광수 선생에 따르면, 박수근의 독자적인 화풍은 ‘고유의 소재의식’과 ‘독자적인 기법의 창안’으로 요약된다. 소재의식에 있어선 서민들의 곤궁한 삶의 모습들을 화면 속에 아로새김으로써 이웃의 “가난하지만 건강한 삶의 모습”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기법적인 면에서는 ‘균질화된 마티엘 감각’을 꼽았다. ‘화강암 돌팍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그의 평면은 50년대 후반에 와서 마티엘의 전면화 현상으로 발전하다가 후반기에는 ‘엉켜드는 마티엘’로 추상화를 방불케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박수근은 “어느 은하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홀로 뚜렷한 빛을 발하는 별처럼 외롭지만 뚜렷한 개성으로 우리미술에 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공주형씨는 박수근 회화의 독자성을 공간의식에 있다고 보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공간을 유형별로 분석하였다. 집, 골목, 마을, 빨래터, 자연, 거리, 시장 등. ‘집’은 초가집, 기와집, 판잣집으로, ‘골목’은 초가마당이나 양지바른 곳, 한적한 도시골목으로, ‘마을’은 농촌마을과 도시마을로, ‘빨래터’는 물 깃는 곳에서 동네 소식을 나누는 곳으로, ‘자연’은 강변과 나무, 풍경으로, ‘거리’는 귀로나 노상으로, ‘시장’은 과일 및 곡식을 내다파는 곳으로 각각 분류하였다. 이 같은 분류는 지금까지 박수근 회화연구에서 진일보된 것이다. 그가 비록 현실에서는 헐벗고 고단했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충만하다’고 설명한다. 공주형씨는 박수근의 공간의식의 특성을 “모든 것이 조화롭고 충일했던 과거의 공간을 현재의 시점으로 호출한다”는 데서 찾았다.


최형순씨는 회화의 기법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최형순씨는 박수근 회화가 ‘선적인 요소’와 ‘회화적인 요소’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고 한다. 나무나 잎사귀를 앙상한 가지만 드러낼 만큼 선 위주로 처리하였는가 하면 모양과 경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이와 동시에 그의 회화는 ‘회화적인 요소’가 함께 등장한다고 한다. 화강석 표면의 거친 질감이 극대화되는 60년대에 이르면 정확한 경계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선들이 ‘너무 흐려서 세월의 풍파에 윤곽이 지워질’ 정도가 된다. 최형순씨는 이런 박수근 회화의 예술성을 “자유롭게 놓아준 의미의 여백이 숨쉬는 곳”, 즉 “어느 한 길만 고집하지 않고 어디로든 흘러 넘칠 수 있는” 유연함과 풍성함이 잠복된 예술로 규정하였다.


다음으로 필자는 박수근의 회화정신을 ‘스플랑크나’, 즉 기독교 정신의 핵심인 ‘긍휼’에서 찾았다. 포기와 허무는 박수근이 지지한 예술철학이 아니라 애옥살이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측은하게 여긴’ 것이 박수근의 예술을 관통하는 독특한 시각이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자기중심적인 사랑보다 훨씬 높은 원리인 ‘스플랑크나’를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우리의 인간성이 충만한 데 이르도록 자란다는 깊은 확신을 보여주었다고 보았다.  발표자는 <할아버지와 손자>를 대표적인 작품으로 제시하였는데 손자를 돌보는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이 작품은 이리와 늑대처럼 안녕(安寧)을 낙관할 수 없는 위험스런 현실공간 속에서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는 할아버지를 통해 ‘천부의 사랑’을 함축하고 있다고 풀이하였다. “장미의 향기는 그 꽃을 준 손에 항상 머물러 있다.”(아다 베야르) 버스에 몸을 맡기고 밤늦게 귀경하면서 퍼뜩 이 말이 떠올랐다. 박수근은 비록 살아생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후대에게 값진 예술적,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었다. 사람들이 그의 작품 주위로 몰려드는 데에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다른 요소가 있지 않나 싶다. 사랑과 위로의 향기를 선사하고 정작 자신은 산화해버린 미의 사도(apostle).



서성록(1957- ) 홍익대 미학 석사. 월간미술 미술평론부문 대상(2001)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위원 역임. 현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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