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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미의 식탁, 동·서양의 미술과 음식문화

이현경

학술(68)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제23회 전국학술대회


인간이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식을 보면, 인류의 시작부터 먹고 마시는 그 기본적 양상은 변화되지 않았지만, 각 시대와 지역에 따라 음식을 둘러싼 문화는 매우 다채롭게 전개됐다. 음식문화는 인간사회를 대변하는 필연적인 문화이기에, 이러한 문화가 시대와 사회를 기록하는 미술 속에 나타나는 것 또한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미술과 연관하여 언제나 존재하였던 음식 문화는 우리의 생활에서 의식치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미술 안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주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미술사교육학회에서는 이렇게 간과되었던 음식이 미술가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풍부한 재료가 될 수 있었음을 주목하고, 음식 문화와 미술의 상호 소통양상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지난 5월 11일(토),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동서양 미술을 살피는 이 학회의 특성을 살려서 음식에 대한 미술적 산물을 고찰하는 풍성한 발표들을 들을 수 있었다.

김정열(숭실대) 씨는 ‘산 자를 위한 죽은 이의 그릇: 중국 상주시대 청동 예기의 성격과 그 변화’에서 고대 중국을 대표하는 유물인 청동 예기(禮器)를 다루고, 그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고대 사회에서 청동은 내구성이 뛰어난 값비싼 원료였으며 예기는 이러한 청동에 고도의 기술을 투여함으로써 완성된 물건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것이 단순한 그릇이라는 용도 외에 고대 사람들이 그것에 상응하는 가치부여를 하였음을 시사한다. 기원전 16세기에서 8세기(상에서 서주 시기)까지 활발히 만들어진 청동 예기는 고대 제례 문화에서 신에 대한 경배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가치와 위상을 표명하는 물건이었다. 예기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일정하게 그 의미가 변화되었는데, 개별 예기의 형태, 각종 예기의 소멸과 탄생, 실제 사용 환경에서의 조합, 장식 문양, 그리고 명문의 등장과 그 내용 등으로 고대 사람들이 예기에 투사한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예기의 세부적 변화를 통해 초기의 사람들이 신에 대한 경외와 신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던 생각이 점차 청동 예기를 만들고 바친 자의 사회적 신분과 관계, 그리고 국가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 등 완벽히 세속적인 일을 나타내는 표상물로 바뀌어갔음을 알 수 있다.    

그릇에 담긴 문화와 미학 
이송란(덕성여대) 씨는 ‘인도 쿠샨왕조 베그람 출토 유리기와 포도주’에서 고대 서양문화의 산물인 로마의 유리기가 왜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인도의 쿠샨왕조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알아보고, 이러한 인도의 로마 문화 수용이 로마 유리가 동아시아 지역으로까지 확산되는 원인이 되었음을 시사하였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북으로 약 60km에 위치한 베그람(Bagram) 지역은 동서로는 인도와 지중해가, 그리고 남북으로는 인도와 중국이 만나는 동서양의 중요한 교통로였다. 이 지역을 포함하여 인도는 기원전 4세기부터 포도주를 소비하여 왔기 때문에 포도주와 이를 담을 수 있는 용기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고대의 간다라미술에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등장하는 것은 이 지역이 그만큼 포도주 문화에 익숙한 곳임을 증명한다. 한편 로마에서는 그리스 헬레니즘 시기까지도 고급 기물로 자리 잡지 못한 유리기가 이후 로마 사회에서 유행하던 연희문화에서 내용물의 맛을 변화시키지 않는데 필요한 포도주 그릇으로 인정받으면서 대중화되었다. 1세기의 무렵의 로마는 신흥 제국으로서 로마 귀족과 시민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물자 공급이 필요하였고, 이를 위해 외국과의 해상 무역을 확대하였다. 이 중 인도의 후추와 보석, 그리고 중국의 비단은 로마의 주요 수입품이었고, 불기 기법으로 대량화 기술을 갖춘 로마의 유리기는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 이러한 무역활동을 통해 인도로 건너간 로마산 유리기는 베그람 지역의 포도주 문화와 접목되며 활발하게 수용되었다.

그리고 더 자세하게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 다음의 발표들이 있었다. 김소희(한국과학기술원) 씨는 ‘17세기 네덜란드 미술과 음식: 뿔피리를 부는 제빵사’에서 네덜란드 특유의 음식정물화의 양상을 다루었고, 이귀영(국립고궁박물관) 씨는 ‘종묘제례의 제수(祭需)와 제기(祭器) 진설 원리’에서 조선시대 종묘제기의 세부적인 형태와 기능을 설명하였다. 앞서 김정열 씨의 발표가 제기를 둘러싼 고대 중국의 사회 양상을 살펴본 것이라면, 이귀영 씨의 발표는 고대 중국의 제기가 근세 조선에서 시대와 지역의 간극을 넘어 어떻게 구체적 의례로 정착되었는지를 알게 하였다. 그리고 유옥경(이화여대) 씨의 ‘풍속화의 농번기(農繁期) 들밥[饁]과 술[酒]’과 김승희(국립중앙박물관) 씨의 ‘감로도의 공양물: 보석사 감로도를 중심으로’는 우리나라 전통의 음식 문화를 그림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조현정(한국과학기술원) 씨는 ‘일본 도시락의 미학’에서 일본인이 그토록 도시락에 들이는 정성이 그들의 전통 다도 미학과 모던 디자인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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