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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슬픈 비오토피아의 미술관

박인하

어린 시절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대신 과학체험관쯤으로 부르기에 적당한 능동어린이회관은 꽤 자주 갔다. 면목동에 있는 우리 집에서 한 번에 가는 노선버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난 그곳을 내 최신 실험실쯤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박 씨 남매 자매간의 소유권 분쟁으로 쇠락한 욕망의 아이콘이 되어버렸지만, 70년대 어린이 회관에는 최신 과학전시물들이 가득했다. (다른 70년대 어린이들처럼) 과학자를 꿈꾸던 나는 그곳에만 가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난 이 거대한 건물 구석 어디에 있는 로봇을 출동시키는 흰 가운의 멋진 박 박사님!


그러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과학자의 꿈은 어려운 수학문제의 난이도와 함께 지평선 너머로 멀리 사라졌다. 그러고 나서 평범한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이해가 가지 않지만, 청춘의 어느 대목에서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나와 다른 세계에 존재했다. 만화평론을 쓰기 시작하고, 엉겁결에 만화 전시 기획도 맡게 되었다. 그제서야 기회가 되면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보게 되었다. 특히 여행갈 기회가 있다면 미술관, 박물관 일정은 빼놓지 않았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일본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크고 작고 다양한 미술관, 박물관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그곳을 추억하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른 잔상은 방문했던 박물관과 미술관이다.


올여름 제주도를 다녀왔다. 대평리 너른 들 한 켠에 구옥을 리모델링해 문을 연 이응게스트하우스에 자리를 잡고 이곳저곳을 마음내키는 대로 돌아다녔다. 처음 찾아 나선 곳은 여러 책자나 잡지에서 소개되었던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이 모여있는 핀크스 비오토피아였다. 이타미 준. 한국명 유동룡. 재일교포 건축가이자, 제주도를 가장 사랑했기에 죽어서도 제주에 묻힌 그다. 제주 중산간 지역에 야트막하게 들어앉은 주거단지 핀크스 비오토피아.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서 있는 미술관들. 손을 모으고 있는 모양을 닮았다 하여 두손미술관, 그리고 돌과 바람과 물미술관. 정말 제주도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방주교회까지 함께 있다니. 그야말로 건축가가 자신의 꿈을 한라산 자락에 펼쳤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안내로 찾아간 그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사설경비업체의 초소.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몇 호에 오셨어요?”

“미술관 보러 왔는데요.”

“죄송하지만 들어가실 수 없어요.”

“예? 미술관 볼 건데.”

“예전에는 일반 개방도 했는데, SK가 인수한 뒤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고 입주민에게만 개방합니다.”


할 말을 잃었다. 건축 전문가가 아닌 나에게도 소문이 들린 이타미 준의 두손, 돌, 바람, 물미술관. 제주의 산하에 다소곳하게 자리잡은 그의 작품을 보려고 했는데, 이젠 볼 수 없는 거구나. 차를 돌려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마음이 우울했다. 다행히 그래도 옆에 자리 잡은 방주교회는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이나 한국의 사찰을 보아도 종교건물은 대개 빛을 통제한다. 극도로 제한된 빛은 사람의 영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건축가들이 지은 종교건물은 대개 빛을 통해 의미를 부여한다. 그 대표적인 건물이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다. 거대한 콘크리트의 물성으로 쌓아올린 교회 건물의 벽을 통해 유일하게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데, 십자가 모양이다. 방주교회의 경우, 십자가 모양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빛은 절제되었고, 전면부의 작은 창을 통해 유입되는 빛은 교회를 찾은 이들의 영성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더불어, 교회 주변을 흐르는 물은 교회가 방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며, 주변과 교회를 일정 정도 분리한다. 다행히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교회는 이타미 준이 제주의 언덕 위에 세운 건축의 의미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다.

 

제주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어느 가이드북에도 다 등장하는 비오토피아의 미술관. 하지만 이타미 준이 설계한 그 미술관은 이제 고급 주택단지의 부속물이 되어있다. 볼 수 없는 미술관이자 고급주택단지의 시설로만 활용되는 미술관. 지금까지 들른 어떤 미술관보다 슬픈 미술관이었다.



박인하(- ) 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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