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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그림, 음악의 날개를 타고

탁계석

내가 그림을 알게 된 것은 이청운 화가와의 만남이다. 그러니까 70년대 초 대학을 다니면서 서울 아현동에 둥지를 튼 화실을 들락거리면서다. 소주병을 기울이며 젊음을 불태웠다. 낭만이 있던 시절이어서 추억이 많았다. 당시 이 화가는 병약해 위태로웠지만 결혼을 하고서부터 살이 돋고 그림이 달라졌다. 우린 아마도 늘 청춘의 꽃밭을 걸었나 싶다. 나는 그에게서 지금의 아내를 선물(?) 받았고, 나 역시 그에게 값을 했으니 인연으로 치면 보통 인연이 아니다. 사람 좋은 그는 돈을 벌면 호숫가에 집을 마련하고 친구들을 청해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여태껏 그 약속 하나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구석> 그림을 눈물로 본다. 나를 자책하며 본다. 모든 그림이 친구처럼 좋아졌다.


내가 요즈음 그를 잘 만나지 않는 것은 그림 사줄 돈이 없어서다. 나 역시 현장을 지키는 가난한 평론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의 거실엔 그의 그림 몇 점이 있다. <구석> 시리즈와 프랑스 도톤느 수상 이후의 밝은 톤의 그림, 그리고 딸아이에게 주고 남은 그림이 있다. 늘 음악을 틀어 놓고 작업을 하던 그에게 오페라를 보여준 적도 있고 콘서트에 초대한 적도 더러 있다. 이후 적지 않은 화가들을 만났다. 최근에 만난 강창열 화가의 그림은 음악적 영감을 주어 ‘열린 시간’ 주제의 가곡과 ‘목관 5중주’(성용원 작곡)를 탄생시켰는데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 명곡이다. 가곡 ‘목련이여’의 CD자켓 그림과 내가 쓴 대본의 오페라 <메밀꽃 필 무렵>도 그려주었다. 오페라는 지금껏 전량 수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엔 <논개>와 <메밀꽃 필 무렵>(7.21-24) 두 편이 무대에 오르고, 이에 앞서서 초조대장경 1,000년을 기념해 만든 조정래 원작의 <대장경>(최천희 작곡, 6.3-4)이 무대에 올라 창작오페라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샤갈 등 많은 서양화가들이 오페라를 보고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우리 화가들도 새 영역에 참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이 들어 있는 화가의 그림을 보면 바로 음악이 재생된다. 물경 4,000회 이상의 크고 작은 음악회, 세기의 대가들을 보았기 때문일까. 이제 세계 음악시장 개척을 위해 벌써부터 음악을 만들어왔는데 반응이 좋다. 오는 6월 29일 생전의 카라얀의 주 무대였던 베를린필 홀에서 지휘자(최영철)가 관현악곡 ‘댄싱아리랑’(Dancing Arirang, 임준희 작곡)을 지휘한다. 특이한 것은 독일 지휘자 두 사람도 함께 이 곡을 연주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한참 불고 있는 한류문화 덕분이다.


전시장의 그림만 그림이 아니다. 음악회장은 더 멋진 그림의 사교장이 될 수 있다. 외국의 콘서트홀은 더 수준 높은 컬렉터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음악의 날개에 그림을 싣고 날고 싶다. 내가 못해 준 화가들에게 그림이 더 높은 값에 팔리는 영광을 돌려주고 싶다. 나의 작품인 ‘아리랑 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선발대로 나설 것이다. 물꼬는 터졌다. 블루오션 시장이 열리면, 친구여! 조금만 기다리시게. 호숫가에서 만나자 한 그 약속을 위해, 부디 건강을 지키시게.



탁계석(1953- ) 경희대 성악과 석사. 2한국음악상 특별상(2008) 수상. 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 세종문화회관 정책 자문위원, 리더스컬쳐클럽 대표 역임. 현 문화저널21 논설주간, 한국예술비평가협회장,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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