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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너무나 당당한 올랭피아

강신주

보이는 것이 흔히 불안을 가져다주게 되는 이유는 보이는 것만으로는 자기의 주체성이 무시되고, 자기가 도구로 보이는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보는 쪽은 주체이고 지배하는 것이며 우월한 것이다. 이때 비해 보이는 쪽은 객체이고 지배되는 것이며 종속되는 것이다.

- 『미와마사시(三輪正), 신체의 철학(身體の哲學)』


중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중간고사가 끝나면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곤 했다. 우리 학교의 단체 영화 관람 장소는 정해져 있었다. 청량리에 있던 작은 극장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극장까지 가는 길이었다. 당시 588로 더 유명했던 유곽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으니까. 초저녁이지만 이미 온갖 야한 등들이 켜져 유곽 실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안에는 도발적으로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젊은 아가씨들로 가득했다. 그녀들은 덩치만 컸지 아직도 미숙한 우리를 놀리는 걸 즐기는 눈치였다. “애들아. 이리와. 누나랑 놀다 가야지.” 깜짝 놀란 우리는 양측에 늘어선 화려한 유곽들을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뒤에 낄낄거리는 아가씨들을 뒤로 한 채 말이다.



중학교 시절 왜 우리는 유곽의 아가씨들에게 겁을 잔뜩 집어 먹었던 것일까? 당시 우리는 기본적으로 일종의 관음증(Voyeurism) 환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성적인 금기가 강한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섹스는 너무나 강력한 욕망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도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금지된 것만을 욕망한다”고 말이다. 당시 대부분의 남자 중학생들 중 음란물을 보지 않았던 아이들이 있었을까. 음란 잡지나 비디오를 통해 우리는 여자의 신체뿐만 아니라 섹스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배웠다. 음란물은 우리를 관음증 환자로 길들였던 것이다. 잡지나 비디오 속의 섹시한 여자는 우리를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보고 성적 흥분을 경험했으니까.


극장으로 가는 길에 도열해 있던 유곽의 아가씨들은 음란물 속의 아가씨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그녀들은 우리를 아주 당당하게 응시한다. 오히려 고개를 숙이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었으니까. 유곽의 아가씨들의 당당한 시선은 우리를 주눅들도록 만든다. 보이는 대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여자가 보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불편한 진실에 도달했던 것이다. 성욕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던 여자가 하나의 주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직면했을 때, 관음증 환자의 최대 위기는 찾아온 것이다. 유곽 아가씨들의 시선을 받으며, 우리는 자신의 음란성이 까발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겉보기에 가장 순수하고 윤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남녀 사이의 모든 사랑을 섹스로 환원시키고 있지 않았는가. 그렇다. 가장 정신적인 체 하지만 우리가 가장 육체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유곽 아가씨들은 가장 육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정신적인 존재였던 셈이다. 유곽 아가씨들만큼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녀들은 섹스가 사랑을 상징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에두아르 마네(douard Manet, 1832-1883)가 1863년에 완성한 <올랭피아(Olympia)>를 보면, 나는 언제나 중학교 시절 우리의 음란성을 당당하게 응시했던 청량리의 아가씨들이 떠오른다. 그림 속의 올랭피아는 자신의 벗은 몸을 당당하게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는 관음증적 대상이기를 거부한다. 그녀는 우리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음란물 속의 여자와는 다르다. 각진 턱과 오뚝한 코로 그녀는 우리의 눈을 응시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음성은 좌절되고, 우리는 그녀를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게 된다. 어느 누가 감히 그녀의 시선에 맞서, 그녀를 단순한 성욕의 대상으로 응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강신주(1967- ) 연세대 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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