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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피카소가 만들어내는 창조와 모방의 양면성

황상민

“저급한 자는 베끼고, 위대한 자는 훔친다.”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피카소가 자주 인용했다는 말이다. 예술적 행위의 속성 뿐 아니라 창의적 사고의 핵심을 지적하는 말이다. 창의적 활동이란 타인의 다양한 노력의 결과들을 끊임없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때 일어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방과 어떻게 다른가? 창의적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로서 항상 던지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창조가 이루어지는 과정, 창조 속에 숨어 있는 모방의 역할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모방과 창조의 차이는 어떤 일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활동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다. 21세기 최고의 창조적 인간이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 인물이다. ‘자기가 없거나 뚜렷하지 않는 인간이 무엇을 하면, 그것은 모방이기 쉽다. 하지만, 자신의 특성이 뚜렷한 인간은 남의 것을 차용하더라도 창의성이 드러난다.



피카소의 미술 작품은 이 과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 피카소의 창조적 행위인 모방은 그저 ‘남의 것을 따라하는 일’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만드는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대표적 사례가 <아비뇽의 처녀들>(1907년) 이다. 이 그림을 통해 피카소는 평범한 화가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창조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이야 현대 미술사의 전환점을 이룬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발표 당시에는 온갖 혹평과 비난의 대상이 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조르주 브라크는 ‘자네는 우리가 톱밥을 먹고 석유를 마시기를 원하는 것 같군’이라는 말로 자신의 당혹스러움을 표현했다. 작품 발표에 동행했던 한 미술평론가는 그에게 ‘캐리커쳐에 전념하는 것이 어떻겠냐’라는 충고까지 했다. 피카소가 이 그림에서 활용한 것, 아니 모방의 특성은 당시 원근법, 명암법을 무시한 야수파의 양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 시대 최고의 유행은 무엇보다 인상파였다.



당시 마티스는 인상파의 대가로서 현대 예술에 위대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가를 받았다. 그의 1905-6년 파리 전시회는 모두를 흥분으로 몰아 넣었다. 당시 파블로 피카소조차도 마티스에 흥분한 한명의 젊은 예술가일 뿐이었다. 피카소는 인상파의 대가였던 앙리 마티스를 모방하면서, 인상파의 표현양식과는 다른 3차원의 세계, 즉 입체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표현했다. <녹색의 선(마티스 부인의 초상, 1905년)>이라는 마티스의 그림은 피카소가 자신의 작품에서 마티스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모방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아비뇽의 처녀들>에는 이전의 인상파 화가인 마네, 고갱의 흔적이 있을 뿐 아니라, 이베이라의 예술과 야수파 화가들의 영향이 뚜렷하다.


특히, 그중에서도 마티스가 묘사한 강렬한 인간 형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당시 피카소는 리얼리즘과 인상파의 전통을 참조하여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피카소는 마티스의 딸이자 조수인 마거릿이 가져온 아프리카 조각상을 보게 된다. 당시는 식민주의 전성기여서 아프리카 미술품들이 유럽으로 많이 들어왔었다. 당시 아프리카 조각은 유럽인들에게 정말 독특한 조각이었다. 그 조각상을 보면서 피카소는 가슴 속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 깨달음의 결과가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구도도 없고, 인물의 모든 부분이 전체적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미지가 나올 수 있었던 동기는 바로 아프리카 조각의 모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인간의 모방행위는 세상을 알아가고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차적 능력이자 가장 기본적인 학습행위이다. 남의 것을 베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것을 끊임없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낸다. 창조의 핵심은 이런 모방 행동 속에 자신의 특성, 개성이 어떻게 반영되느냐이다. 모방하는 인간의 개성이 없다면, 결코 창조적 작업이 되지 못한다. 모방이 창조가 되기위한 핵심은 모방의 단서들을 통합할 수 있는 자신의 스타일, 자신의 사고와 특성이다. 피카소가 최고의 창의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분명한 자아와 개성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창의적 사고는 원하지만, 개성있는 인간을 두려워 하는 사회라면, 창의의 싹은 자라나기 힘들다.



황상민(1962- ) 하버드대 심리학 석사 및 박사. 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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