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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얼굴조차 모르던 아버지, 작가 임군홍을 마음에 그린 73년

임덕진

1948년 차남인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월북무용가 최승희를 달력에 썼다며 수감되었다 미군들까지 탄원서를 써서 제출한 끝에 5.10 총선을 앞두고 막 출소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읽고 싶다고 하셔서 어머니가 영치품으로 넣어드렸던 책에는 연필로 줄이 그어진 구절이 많았다. 1950년 6·25 때 아버지가 북으로 가신 뒤 나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책을 들여다보며 수감 중에도 열심히 읽으셨을 아버지 얼굴을 상상했다.

어머니는 가세가 기울어 명륜동 집을 팔고 이모네 문간방으로 이사 갈 때도 아버지 작품은 종이상자에 신문지를 한 장 한 장씩 끼워서 외삼촌 집에 맡겼다. 다른 살림은 몰라도 그림, 화구, 아버지가 보던 책, 자료 등 아버지에 관한 건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마침내 집 한 칸을 마련해 맡긴 아버지 그림을 다시 가져오던 날 밤새 우셨던 어머니. 1982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도 “아버지 그림을 꺼내 세상 사람에게 보여주면 좋겠다”였다. 본인께서 한번 해드리고 싶었는데 못했다며,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김달진이 가다> 유튜브 캡쳐, 2023.8.11


그래서 이리저리 방법을 찾던 중에 화랑협회장이자 예화랑 대표셨던 김태성 회장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옛날에 천일화랑 하셨던 이완석이란 분이 아버지를 많이 아끼셨다”라고 소개하니 깜짝 놀라시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 1세대 산업 디자이너인 이완석은 생전에 아버지와도 가까우셨고 아버지가 북으로 가신 뒤에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명절마다 용돈을 챙겨주신 분이다. 아버지가 북한에 가신 뒤로 빨갱이 가족으로 낙인찍힌 우리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천일화랑 건너편이 광장시장이라 어머니 가게도 자주 찾아 살펴주셨고, 친할머니 입관에도 오신 아버님 친구분 중 거의 유일한 분이었다. 천일화랑이 바로 예화랑의 전신으로 김 회장님이 ‘완석이 아저씨 사위’라니 얼마나 놀랍던지, 아 이렇게 완석이 아저씨와 다시 만나는구나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김 회장님으로부터 미술평론가로 당시 한국일보에 「현대미술 100년」을 연재하고 있던 윤범모 선생을 소개받아, 그분의 주선으로 작가 임군홍의 그림이 해방 이후 처음으로 1984년 롯데백화점 롯데화랑 전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신문기사도 나고 KBS ‘문화살롱’에 방송도 탔다. 이 전시는 어머니 ‘홍우순’께서 나를 먹여 살렸던 광장시장판에서, 아버지 ‘임군홍’ 속으로 나라는 존재가 옮겨간 계기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다섯 점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1985년에는 미술관에서 임군홍 특별전도 열렸다. 아버지의 그림을 팔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초창기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팔지 않았다.

1996년 도록 제작을 위해 촬영을 맡았던 사진가가 작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더니 “임군홍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와,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군요” 감탄했다. 사는 일에 여유가 생긴 뒤라 ‘이번에야말로 아버지 작품을 제대로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각종 자료와 스케치까지 자세하게 보기 시작했다. 거실 중간에 이젤을 세워놓고 한 점 한 점을 가져와 ‘그림 명상’ 시간을 가졌다. ‘이건 비 온 뒤의 마음 상태를 그리셨구나, 이 건물은 이래서 이렇게 작게 그리신 거구나…’ 신기하게도 그림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후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절필시대’ 6인전에서 조명받고, 금년 예화랑 45주년 기념 ‘밤하늘의 별이 되어’전 출품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작가 임군홍은 식민지 시대와 해방공간을 거치며 오로지 예술정신 하나로 살았던 사람이다. 조국과 중국을 오가고 일본 작가와도 교류하며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며 자유롭게 살았다. 틀과 규격에 얽매이지 않으며 대담한 화풍을 구사한 임군홍의 그림을 보노라면 우리나라 근대 화가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예술혼 하나로 진정한 자유를 누렸던 임군홍 정신을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정전 70주년 기념으로 미술관 규모로 두 달간 전시를 열어준 예화랑 김방은 대표께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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