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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고흐(GOGH)와의 인연

오세정

빈센트 반 고흐, 초상화, 1887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미술하고는 별 인연이 없었다. 우리집은 상당한 대가족이었지만 친척 중에서 미술과 관련 있는 일을 하는 분은 하나도 없었고, 나 자신 또한 미술에 흥미나 소질이 없는 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과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미술에서 미(美) 이상의 성적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런 나에게 미술 작품과의 인연을 맺어준 일은 대학교 1학년 때에 일어났다. 당시 나는 미대에 다니는 여학생과 풋사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90)의 작품집을 선물한 것이었다. 1970년대 초 당시로써는 아주 고급스러운 용지에 고흐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모두 수록한 두툼한 책이어서 (게다가 외국에서 직수입한 책이었다!) 나에게는 매우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나는 그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바로 빨려 들어갔다. 고흐의 유명한 1887년 자화상이 표지였는데, 무언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동질감 내지 공감이 절절히 느껴졌다. 물론 과거에 흔히 보던 자화상들과는 다른 독특한 붓 터치도 새로웠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이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로서 일반 대중들이 따라오지 못해 고독감을 느끼는 얼굴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 후 고흐의 일생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면서 그가 느꼈을 외로움, 좌절감, 그리고 어쩌면 세상에 대한 배신감 등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해에는 1970년대 초 유행한 미국 가수 돈 맥클린(Don McLEAN)이 노래한 <Vincent>라는 노래도 한몫하였다. 나는 원래부터 가수 돈 맥클린을 좋아했는데, 특히 <Vincent>라는 노래는 그 가사가 매우 철학적이어서 좋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노래가 고흐의 이야기를 한 것이라는게 아닌가. 돈 맥클린이 어느 날 고흐에 대한 책을 읽다가 영감이 떠올라서 쓴 곡이라는 것이다. <Vincent>라는 제목은 고흐의 이름(First name)에서 왔고, 이 곡이 시작하는 ‘Starry Starry Night’ 이란 가사는 고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The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이란 1889년 작품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 노래 가사 중에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rom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라는 대목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고흐가 정신병으로 자살했다고 알려졌지만 어쩌면 고흐의 천재성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미친 사람 취급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노래의 2절은 But I could ha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 라는 가사로 끝맺고 있는데, 이 평범한 세상을 살기에 고흐는 너무도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그리고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맞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가사이다.

또한 작년에는 고흐의 특별한 일생과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100명 이상의 화가들이 고흐의 화풍과 기법에 맞게 유화를 그려 애니메이션화 한 것으로서 세계 최초의 수작(手作)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제30회 유러피안 필름 어워즈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받았고 올해 제90회 아카데미 영화제에도 최우수 애니메이션상 후보로 올라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우연히 해외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보았는데, 한번 시작하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이처럼 고흐의 작품은 원작 그림만이 아니라 음악, 영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역시 세계적 천재는 문화 영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고흐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던 것이다.

- 오세정(1953- ) 서울대 학사, 미국 스탠포드대 물리학 박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1984-2016),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및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역임, 현재 20대 국회의원(미래바른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제6회 한국과학상 수상(1998), 제2기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 선정(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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