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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물리학자와 화가 사이

이기진

내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보는 말이 있다.
“물리학을 하시는데 그림을 좋아하세요?”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할 때가 많다. 물리학과 그림 무엇이 다를까? 예전 청소년기에는 고흐에 몰입했고 고갱의 삶을 동경했고 피카소와 마티스의 표현에 정신적인 지평선을 쉽게 열 수 있었다. 좋아하는 화가들의 삶을 동경했고 한때 화가가 될 결심을 하기도 했다. 이런 예술적인 감성은 청소년기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감성의 일부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그 시기 그림에 몰입했고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다른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동시에 당시 어려운 수학 문제와 물리 문제에 매달릴 때도 이런 느낌이 들었다. 위대한 양자물리학자들의 삶 역시 나의 감성을 건드렸다. 세상을 밝히는 냉철한 물리학의 문제 속에 인간적인 스토리가 존재했고 고흐의 삶과 같은 열정이 과학자들에게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화가들이 남긴 예술 작품과 같은 감동적인 물리학 논문들을 물리학자들이 남겼다는 점이다.

지금 물리학에 매달리고 있지만 그림의 세계와 물리학의 세계는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물리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물리학적 사실을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발표를 한다. 이런 논문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남들과 다른 생각과 방법을 통해 뭔가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새로움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논문을 참조하고 기본 지식을 얻기 위해 오래된 문헌을 찾아 끊임없이 공부를 한다. 그리고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 세련된 기술을 연마해 실험결과로 증명한다.

그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의 이야기를 최고의 기법을 통해 작품이라는 형식으로 완성해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표현한 결과물을 세상 사람들이 평가를 한다. 마치 저널에 발표한 논문처럼. 그 평가의 핵심은 무엇이 새로운가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또한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냈는가가 아닐까? 그래서 훌륭한 마티스의 그림이 잘 쓰여진 물리학 논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닐까?

아인슈타인이 1915년 발표한 상대성이론 논문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학 논문은 한 편의 예술작품과 같다.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귀신과 같은 기술로 자신이 생각해낸 사실을 보여준다. 논문을 읽는 사람은 논문 한 편을 통해 과학적 영감을 얻는다. 논문을 읽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나도 이런 논문을 써야지하면서 꿈을 키운다. 마치 퐁피두센터에 걸린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 화가의 느낌과 비슷하다.

물리학에도 학문의 가지가 많다. 세분화된 전공에 들어가면 같은 물리학자라도 서로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카테고리의 영역에서는 전문성에 대해 객관적인 잣대가 있다. 그 잣대를 통해 물리학자들은 서로 경쟁하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을 한다. 화가들 역시 경쟁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에는 중요한 저널 몇 권이 있다. 100년 이상 엄격한 권위에 의해 전통을 지켜온 저널이다. 이 저널에 논문을 실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그 저널의 지면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물리학자는 그 저널에 논문이 실리기 위해 노력을 한다. 치열한 경쟁의 끝에 단 몇 편의 논문만이 그 저널에 실리기 때문이다. 그 저널에 논문이 실린다는 것은 자신의 학문이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에 치열할 수밖에 없다. 화가들 역시 최고의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이 소장되는 것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지 않을까?

창성동실험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서촌에서 작은 한옥 갤러리 “창성동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화가들이 이곳에서 전시했다. 그들을 물리학자 입장에서 지켜본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이 작품이 어떤 의미의 논문과 같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다.


- 이기진(1960- ) 서강대 마이크로파 물리학 전공.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꼴라쥬파리』,『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컬렉션 발견의 재미』, 『20 up』외 다수 지음. 서촌 창성동실험실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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