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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작품에는 작가의 감성이 배어있다

조희문

칸디도 포르티나리, 커피 노동자, 1934, 캔버스에 유채, 100×81cm


나는 20대에 브라질로 유학 가서 20년을 지냈다. 한국에서 군사독재로 암울했던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에게 브라질은 숨통을 틔워준 탈출구였다. 나는 함께 살던 브라질 친구와 상파울루미술관(MASP)을 자주 들락거렸다. 미술관 구내식당이 싸고 맛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은 무료입장에 학생은 반값이었다. 그때 상파울루미술관에서 국민화가인 칸디도 포르티나리(Candido PORTINARI)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오늘 말하려는 <커피 노동자(lavrador de cafe)>가 그 작품이다.

포르티나리(1903-62)는 상파울루 인근 브로도브스키의 커피농장에서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으나 천재성을 인정받아 15세에 리오에 있는 국립미술학교(Escola Nacional de Belas Artes)에 입학했다. 학교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아 2년간 프랑스 유학의 기회가 주어졌고, 이때 반 고흐,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등의 영향을 받아 자기만의 독특한 화풍을 세웠다. 브라질을 소재로 강한 원색을 사용하고 작품에 감성과 의미를 집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1931년 귀국하여 그린 첫 작품이 바로 <커피노동자>였다. 포르티나리는 멕시코 벽화주의(Muralismo)의 영향을 받아 1936년에는 브라질 교육문화부 청사에 포레스코 벽화 등 브라질 노동자들의 삶을 표현하는 많은 벽화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알프레드 바(Alfred BARR) 관장은 단번에 그의 작품성을 알아보고 단독전시회를 주선했으며, 포르티나리를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포르티나리는 총 5,000점이 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때문에 물감의 납에 중독되었으나 의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붓을 놓지 않아 60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소개하는 <커피노동자> 외에도 <성모의 기적>, <고난의 길>, <성스러운 가족>, <이집트 탈출>, <커피 경작자>, <노는 아이들> 등이 있다.

<커피노동자>는 나를 미술세계로 이끈 마중물이었다.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손과 발이 과장되게 큰 흑인일꾼이 당당한 모습으로 화면을 독차지하고 있는 아주 생뚱맞은 모습이었다. 흑인일꾼이 마치 왕이나 된 것처럼 농기구를 총이나 칼처럼 단단히 움켜쥐고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 무언가 재미있어 보였다. 정면을 바라보는 몸은 빈틈이 없어 보였고 먼 곳을 응시하는 얼굴은 육체 노동자의 피곤함은커녕 나폴레옹과 같은 승리자의 모습처럼 보였다. 옷에 비친 그림자로 봐서는 늦은 오후인데 그렇다면 중노동에 지쳐있을 시간에 왜 저리도 당당할까? 하늘에는 잔뜩 구름이 껴있지만 밝은 색조로 처리되어 있어 어둡거나 슬픈 느낌은 들지 않았다. 흑인일꾼의 머리는 단정하고 콧날은 높이 오뚝하게 서 있고. 저 멀리 기차가 연기를 내뿜고 지나가고 그 옆으로 끝없는 커피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이 마치 흑인 인부에게 정복당한 느낌을 주었다. 포르티나리는 왜 근육질의 흑인노동자를 화면에 꽉 채웠을까? 왜 손과 발은 그토록 크게 그렸을까? 오른편에 나무는 왜 잘려나갔을까? 발가락은 왜 옆에 있는 나무의 밑동처럼 땅에 꽉 박혀있는 듯 단단한 느낌일까? 흑인일꾼이 마치 동상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을 자주 보면서 다양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이러한 호기심은 작가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등 나도 모르게 미술작품에 깊은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포르티나리는 커피를 소재로만 56점의 작품을 남겼다. 커피농장은 포르티나리가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었다. 숨지기 전까지 손을 댄 작품도 커피농장이었다. 노동자의 힘든 삶뿐만 아니라 인디오, 흑인, 메스티소, 브라질의 개척자들은 작품의 단골 소재였다. 사회문제에 큰 관심이 있던 그는 노동착취와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그림을 통해 고발하고자 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구도나 대칭 문제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핍박받는 인간을 작품의 중심에 두었다. 포르티나리는 “작품의 정신은 작가의 감성을 알려주며 작품은 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에는 작가가 사회를 보는 감성이 담겨있으니 찾아보라는 말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브라질과 중남미 미술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게 되었다.


- 조희문(1960- ) 브라질 상파울루대 법학박사 취득. 브라질 상프란시스코대 교수, 로펌 데마레스트 변호사 역임. 국무총리 표창(2005). 『국제법』, 『현대국제사법』, 『브라질 비즈니스법』 외 지음. 작가후원 패트론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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