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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아니 벌써’ 김창완의 그림

주철환

산울림 1집 아니 벌써(1977)


싱숭생숭. 캠퍼스엔 가을이 저물고 대학 졸업은 코앞에 닥친 1977년 초겨울 어느 저녁.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3년 후배인 근홍이가 우람한 몸집에 장발을 출렁거리며 신당동 집으로 불쑥 찾아왔다. 지금 같으면 미리 문자라도 몇 글자 날렸을 테지만 그때는 거리마다 공중전화가 즐비하던 시절이라 연락 없이 무턱대고 집으로 들이닥쳐도 그다지 이상할 게 없던 시절이었다.

근홍이는 공대생인데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았고 무엇보다 대중음악에 관심이 남다른 녀석이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에서 LP 한 장을 꺼내더니 “형, 졸업선물.” 그리곤 씩 웃더니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과 친구 창익이가 드럼을 좀 치는데 이번에 자기 형들이랑 앨범을 냈어요. 한번 들어봐요. 정신이 번쩍 들 거야.” 음반표지부터가 색달랐다. ‘초등학생’이 그린 크레용 그림 속엔 사람과 자연, 문화와 문명이 공존하고 있었다. 태양과 꽃, 나무, 자동차, 자전거, 그리고 시계 옆에는 ‘아니 벌써’라는 네 글자가 뚜렷했다. 그 위에는 좀 더 큰 글씨로 산울림이라고 씌어있었고 밑에는 ‘불꽃놀이’, ‘문 좀 열어 줘’라는 노래 제목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가요를 친구삼아 지내던 터라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로 돈 모아 장만한 보물 1호는 별표 전축이었다. 턴테이블 위에 디스크를 조심스레 얹는 순간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만드는 사운드의 폭격이 개시되었다.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 밖이 훤하게 밝았네.” 산울림과 나의 역사적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최고의 졸업선물을 미리 받은 그 날 이후 나는 온전하게 산울림 3형제의 정서적 포로가 되고 말았다. <아니 벌써> 부터 마지막 트랙의 <청자>까지 듣고 또 듣고 부르고 또 불렀다. 한때 나의 눈길과 손길이 닿던 음반들은 이제는 유통기간이 지난 연애편지처럼 되어버렸고 내 청춘의 부활을 알리는 <불꽃놀이>는 대학 4년의 마침표를 느낌표로 바꿔주었다. 특히 ‘문 좀 열어줘’라는 산울림의 애틋한 절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던”(<고래사냥> 가사 중 일부) 엄혹한 시대의 청년에게 한 줄기 햇살 같은 주문이 되었다.

제대 후 방송사에 PD로 들어온 후 스튜디오에서 실물로 맞닥친 김창완은 왠지 오래전부터 ‘아는 형님’처럼 상냥하게 느껴졌다. 허락도 안 받고 바로 형이라고 부르며 접근했다. 막내(김창익)의 친구인 근홍이한테 음반 선물 받은 과거사부터 시작해서 군대 가기 전 모교에서 국어교사 할 때 산울림의 노래가사를 과감하게(?) 수사법 교재로 사용했다는 회고담, 그리고 산울림의 모든 음반을 나오는 즉시 줄 서서 구매했다는 애정 고백, 스물여섯 늦은 나이에 입대한 후 논산훈련소에서도 형(김창완)이 만든 수많은 노래를 입에 달고 다녔다는 실화까지 수다스럽게 털어놓았다. 특히 “갈 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으로 시작하는 <청춘>은 연무대의 눈물고개에 힘없이 던져진 ‘고문관’ 나를 일으켜 세워준 희망가였음을 간절하게 증언했다.

대중가요에는 사운드와 메시지, 그리고 이미지가 있다. 울긋불긋 그림을 그린 ‘어린아이’는 알고 보니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이었다. 무대에 데뷔한 지 벌써 40년이 되는 올해에도 그는 여전히 TV, 라디오, 공연 무대에서 재능과 열정을 발휘하고 있다. 영원한 활화산 청년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김창완은 볼수록 다빈치 같은 사람이다. 그의 연기를 보고, 그의 음악을 듣고, 그가 쓴 글을 읽고, 그가 그린 그림을 볼 때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의 위력을 실감한다. 세월이 흘러 막내인 창익은 불의의 사고로 저세상 사람이 되었고 산울림을 내게 소개한 근홍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종적이 묘연하다. 하지만 내 마음속 동화 같은 그림과 울림은 오늘도 나에게 낡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나직이 속삭인다.


- 주철환(1955- ) 고려대 대학원 국어국문학박사. MBC PD(1983-2000), 이화여대 교수(2000-07), OBS 사장(2007-09), JTBC 대PD(2010-13), 아주대 교수(2014-16) 역임. 현 서울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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