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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색채와 나

김승옥

김승옥, 순천만 습지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니까 예닐곱 살 때 우리집에 팔레트와 수채화용 붓이 몇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어머니나 아버지가 학창 시절에 쓰던 것이었던 모양이다. 팔레트에는 수채화 물감이 딱딱하게 굳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딱딱하게 굳어 있는 물감으로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곤 하였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그림은 항상 한가지였다. 처마 밑에 붕어 모양의 풍경이 매달려 있고, 아치형의 문이 있고, 계단이 있는 집 한 채였다. 

그 무렵 나는 어른들이 저녁식사 후 노래를 시키면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를 부르곤 했는데 그 그림을 그려놓고 어른들에게 보이며 ‘이것이 성불사다’라고 하곤 했다. 

그림은 어두운 색채들로 그렸다. 굳어버린 물감을 물붓으로 마구 문질러 겨우 색채를 얻어내는 것이었고, 이 색 저 색 아무렇게나 뒤섞었으니 혼탁한 색깔일 것은 뻔했다. 그러나 ‘깊은 밤의 성불사’를 그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아니 그렇게 혼탁한 색깔밖에 쓸 줄 몰랐기에 그 어둡게 그려진 그림을 놓고 ’성불사 깊은 밤‘이라고 발라맞췄던 것 같다. 

어떻든 그 나이의 나에게서 물감이 나타내는 색채의 세계란 어둠을 표현하기에는 적당한 것이었다. 밝고 맑은 갖가지 풍부한 색채는 햇빛에 드러난 현실의 모든 사물에만 충만해 있었다. 나중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크레용을 처음으로 샀을 때 나는 그 열두 가지로 확실하게 구별되어 있고, 서로 섞이어 혼탁한 색깔이 되어버리지는 않는 물감이 몹시 신기했다.

요즘 동네에서 화판과 크레파스를 든 어린이들이 미술학원에 오가는 모습을 보는 나는 문득 ‘성불사’를 그리던 내 모습과 물감에 의한 색채의 세계에 대하여 그 무렵 내가 느끼고 있던 것들이 파편으로나마 기억나곤 했다. 


순천문학관



내가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다. ‘정식으로’란 말이 우습지만 어쨌든 석고 데생이니 보색(補色), 색의 명도(明度), 심지어 인상파(印象派)의 이론 따위까지 나한테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났던 것이다.

신경청(申敬淸) 선생님이 그분인데 당시의 정확한 연세는 모르겠으나 어린 나한테는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분이었다. 제주도 분인데 일본에서 미술대학을 나오셨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상 관계로 제주도에서 살 수 없어 친구인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께 와서 의탁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처럼 매일 학교에 출근은 하시는 것이었으나, 하시는 일은 학교 복도에 붙이는 교육용 차트나 그리고, 학생들 미술대회나 주관하시고, 다른 선생님들께 미술지도나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고도 많이 남는 시간엔 화구 들고 학교 부근의 들이나 산으로 다니며 풍경화를 그리시곤 하였는데, 말하자면 나는 그 선생님께 선택되어 신선 옆에 붙어다니는 동자처럼 항상 붙어다니며 그림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도 내가 화판을 들고 슬그머니 교실 뒷문으로 나가면 으레 신 선생님하고 그림 그리러 야외로 나가는 줄 알아주시곤 하였다.

야외로 나가면 그분은 이젤을 세워 놓고 유화를 그리시고, 나는 그분이 잡아준 구도의 풍경을 수채로 그리는 것이었다. 웃으시면 주름투성이가 되는 긴 얼굴, 큰 키, 큰 손발, 유도가 3단이라는 그분이 어린애처럼 콧물이 입술까지 흘러내린 채 담배를 문 입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봐라.” “저 초가지붕 색을 내려면 이 색하고 이 색하고 섞어 봐라.” “붓에 물을 듬뿍 찍어라.”등등 가르쳐 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느 때는 황토 언덕의, 그 얼핏 봐서는 주황색 하나뿐인 듯하나 자세히 보면 자주색·갈색·보라색·붉은색 등등 갖가지 색채로 이루어진 풍경을 앞에 놓고 그 색채들을 제대로 켄트지 위에 나타내는 데 하루를 몽땅 바쳐버리기도 하였다.

내가 물감이 나타내는 색채의 세계로 들어간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현실의 모든 색채는 붓끝에서 물감에 의하여 발가벗겨지고 분해되고 재구성되었으며,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색채의 세계-그림은 이미 다른 현실,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경이의 다른 세계였다. 그리하여 이제 막 튜브에서 짜낸 연두색 수채화 물감의 그 영롱한 색채만 있으면 나는 한겨울에도 봄의 그 산뜻한 숲과 훈훈한 바람을 느꼈고, 그늘진 흙담의 좁은 골목도 내 의식엔 개선되어야 할 불쌍한 빈민가의 골목으로서가 아니라 켄트지 위에 옮겨놓고 싶은 한 폭의 아름다움으로 분해되는 것이다.

그렇다. 색채의 아름다움에 눈이 길들여진 사람들은 알리라. 이제 막 페인트칠을 끝낸 깨끗하고 질서정연하고 살기 편리해 보이는 고급 주택가에서보다도 녹슨 함석지붕이 너덜대고 얼룩덜룩 썩은 판자벽 군데군데 지저분한 물웅덩이가 패어 있는 빈민가의 풍경 속에서 나는 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전동차가 달리는 깨끗한 지하철에서보다 잡초가 우거지고 녹슨 레일이 꾸불꾸불 버려져 있고 검은 침목더미가 쌓여 있는 황폐한 폐역에서 더 아름다운 세계를 만나 감동하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부패와 무질서 속에서 색채들이 더 풍요하고, 색채가 펼치는 깊은 감동의 세계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자에게는 단조로운 질서가 오히려 추악해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나는 때때로 내가 남들의 눈에는 아무렇지 않거나 역겨워 보이는 풍경에서도 아름답게 분해되어 재구성되는 경이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풍요한 삶을 얻는 대신 사회인으로서 도덕적인 분노의 능력은 마비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염려한다. 미의 세계를 얻는 대신 도덕의 세계를 잃었다면 결코 풍요한 삶은 아닐 것이기에.


- 김승옥(1941- ) 서울대 불문과 졸업, 세종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1999-2003) 역임. 한국일보 신춘문예 『생명연습』 당선(1962), 동인문학상『서울 1964년 겨울』(1965), 대종상 각본상(1968), 이상문학상 『서울의 달빛 0장』(1976), 기독교문화대상(2012), 제57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부문(201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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