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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유화정물과 금천 미세스

안호상

중학교 때 1년 내내 한 선생님을 피해 다닌 적이 있다. 그분은 나를 볼 때마다 미술부에 가입하라고 말씀하시는 미술 선생님이셨다. 나는 그림 도구를 준비해온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시골에서 초등학교에 다녔고, 초등학교 6년 동안 크레용 한 번 잡아본 적이 없었다. 전학온 중학교에서 실기 시간에 처음 그린 유화 정물이 어떤 연유인지 선생님 눈에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미술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실기 시간이 너무나 당혹스러워 그저 물감을 짜서 꾹꾹 눌러 겨우 시간에 맞춰 제출한 정물화였는데 그 그림을 앞의 교탁에 올려놓고 학생들에게 “이것도 그림이다”라고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였지만, 더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에게서 미술은 그 이후로 멀어져 갔다.


임흥순, 사적인 박물관, 아카이브&설치, 2012


나는 서울문화재단에 재임 중이던 2009년 서울시가 보유했던 동사무소, 보건소 등 공공사업용지 11곳에 창작공간을 조성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문래동 철공단지에 정착한 예술가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지원센터를 만들거나, 임대료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는 홍대 앞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공실화되는 재래시장에 디자인·공예 등 작가들을 입주시키는 일 등이었다. 썰렁하게 비어있던 재래시장 내부에 55개의 스튜디오를 만들어 시장 상인을 지원한다는 억지스러운 구실로 예술가들을 입주시킨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엉뚱하게도 점포가 문 닫은 밤에야 나타나는 예술가들, 유리문으로 공개된 작업실의 불편함, 쓰러지는 상권이 문화적 미봉책(?)으로 되살아날 것인지 하는 회의 속에서 뜻밖에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며 이곳을 서울의 이색 관광코스로 만들었다.


신당창작아케이드와 협업으로 기획된 중앙시장 내부
 
그 당시 금천예술공장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부 8인이 모여서 만들었던 ‘금천미세스’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자격증을 통해 직업을 얻어 가족에서 벗어나고 싶던 10대의 기억, 책받침과 책갈피를 채우던 80년대 팝스타의 사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진학을 포기했던 시절의 일기장 등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개인의 역사를 작가 임흥순 선생의 지도로 훌륭한 미술관 전시형태로 보여주었다. <사적인 박물관>으로 명명된 이 작업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백남준아트센터에 전시되면서 일반 주민도 예술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주민의 삶이 훌륭한 예술이란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다. 

누구나 표현해보고 싶은 것 한두 가지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 금천예술공장이 없었다면? <사적인 박물관>이라는 프로젝트가 전시작업의 형식을 빌지 않았다면? 금천미세스는 자신의 숨기고 싶었던 기억을 들어낼 수 있었을까? 중학교 시절 ‘미술’이 나에게 그렇게 갑자기 침입해오지 않고 서서히 다가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성인이 되고 예술계에서 일하면서 많은 작가를 만나고 박물관, 미술관을 방문하고 미술과 접할 기회가 점점 많아질수록 예술가가 부러울 때가 있다. 가끔은 기획자로서의 직업적 회의가 들어 내가 작가나 연출가가 되었으면 하는 꿈같은 생각이 머리를 내밀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사적인 박물관>에 출품했던 ‘금천미세스’ 아주머니의 환한 미소와 함께 어릴 적 그 장면이 내게 떠오른다.


- 안호상(1959- )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졸업.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11), 서울문화재단 대표(2007-11), 국제공연예술협회(ISPA)이사(2012- ), 더뮤지컬 어워즈 공동집행위원장(2012-13). 현 국립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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