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80)인식론의 한계를 넘어 상호주관성을 추구하는 고야의 작품

조명대


프란시스코 고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프랑스 혁명이 스페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기 스페인의 민족주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e de Goya)가 왕성하게 활동했다. 당시 고야는 프랑스와 비교하면 뒤떨어진 스페인에 계몽주의 정신을 알리고 싶었다. 고야의 판화집 『변덕들(Los Caprichos)』43번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라는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어둠 속에서 검은 박쥐들이 에워싼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든 인물로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깨어있는 이성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뿐만 아니라, 감성과 이성의 균형 잡힌 인식론도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성이란 것이 무엇이던가.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힘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통제 가능한 이성인 에고(Ego)가 가상현실을 통해 이드(Id)화되는 세상, 바로 그것이 우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괴물이 아닌가 한다. 새로운 질서가 열리는 그 당시에 이성 또는 집단 이성의 잠들어 버리면 통제 불가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모두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률과 책임감을 요구하고 있다. 항상 깨어있지 못하면, 이성이 잠이 들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측면, 통제 밖의 우리, 나답지 않은 민망한 부분, 낯설고 때로는 무서운 것들이 튀어나오는 어두운 밤의 세계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정신분석학자 융이 말한다. 이것을 괴물처럼만 여겨 우리 안에서만 감추고 키울 것이 아니라 적절히 사용하고 계발해서 양지로 끌어내서 볕을 쏘여주라고 한다. 그러면 스스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도 하고 그것을 또 창조의 원천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같은 맥락으로, 1797년의 고야의 데생에서도 “상상이 이성과 결합하면 모든 예술의 어머니, 모든 경이로움의 원천이 된다.(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라고 말하고 있다. 이성과 상상 사이에서 태어난 균형 잡힌 예술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바로 감성과 이성이 부리는 조화가 창의력의 원동력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 이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감성이다. 감성은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핵심 요소인 공감을 만드는 원천이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하고 균형 있게 발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로 다른 극단이 경계를 허물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새로움이 창조된다. 두 관점의 확대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건 상식과 고정관념이 없어진 상태에서 시작된다. 그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은 쉽지 않지만, 서로가 낮아져 그 경계선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가 연결된다. 이때 우리의 창의성이 발휘되기 시작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왔다. 바로 이 생각하는 힘과 능력이야말로 이성의 중핵을 이루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바로 합리성을 말하며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합리적 생각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의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보편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명제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지식 또는 인식은 객관적이며 절대적이라고 믿게 된다. 이는 헬라 철학, 특별히 플라톤이 추구한 보편적 진리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갖는 각자의 특수성은 보편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우리 인간의 삶에 실제 얼마나 존재할까?  


바로 이 점에 대한 고민을 고야가 이 작품을 통해서 표현한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이성만을 추구하는 정신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또 다른 한편에는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면서 따듯한 감성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표현하고 있다. 사실 객관적 지식과 실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함께 공유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를 철학과 심리학에서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고 표현한다. 즉, 상황에 대해 공유된 이해가 상호주관성을 만드는 것이며 서로 다른 관점의 이해와 수용을 위해서 이솝 우화에 나오는 수탉과 부엉이의 이야기가 인문·과학·기술 등에서 융합을 시도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명대(1955- ) 미국 시라큐스대 석사,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박사. 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겸임부교수,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Linked Data연구센터장.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