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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미술에도 알파고 시대는 오는가?

강철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개발한 거장 화풍 변환 프로그램

2010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오스카)에서 작품상 후보가 5개에서 갑자기 10개로 늘어났다(그 이후로 줄곧 작품상 후보는 매년 8-9개). 1945년부터 작품상 후보를 5개만 선정하던 오래된 전통이 갑자기 바뀐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는 CG(컴퓨터 그래픽) 영화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할리우드 수뇌부의 지혜로운 결정이었다. 당시는 <아바타>의 세계적인 성공 여파로 할리우드 영화 제작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영화인 모두에게 엄습했던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CG 일색인 블록버스터 영화가 대세가 되어버리면 전통적인 영화 창작자(배우, 작가, 감독, 스태프 등)들은 일자리를 잃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훌륭한 휴머니즘 영화를 작품상 후보에서 아깝게 떨어뜨리지 않고 최대한 많이 품음으로써 사기를 진작하려는 그들만의 해법이었다. 이 전략은 주효해서 매년 아쉽게 작품상 후보에서 탈락했던 독립영화, 중저예산 영화, 핸드메이드 영화들이 작품상 후보에 다수 들어갔고 휴머니즘 영화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오스카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견제하여 작품성이 충분했던 <다크나이트>, <반지의 제왕> 같은 경우도 시상에 매우 인색하거나 마지못해 인정하는 경향이 짙다. 올해 <매드맥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할리우드는 CG 중심의 블록버스터와 오스카 중심의 휴머니즘 영화가 각각의 논리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 완성도 높은 휴머니즘 영화가 다수 발표되어 아카데미 영화제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고 있다. 이는 마치 오래전 한국이 문화 경쟁력이 낮을 때 일본 대중문화를 철저히 막고, 스크린쿼터 등으로 버티어 오늘날 한류 콘텐츠 생태계가 존재하게 된 이치와 같다. 

천재의 도전이 생태계 논리보다 중요할까?
IBM 슈퍼컴퓨터 딥 블루에 패한 러시아의 체스 황제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는 세계 체스 인구는 그대로이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체스 챔피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아쉬워한다고 했다. 초월적 가치인 상징계가 사라진 것이다. 역사적 미담으로 끝난 이번 알파고 대국을 끝으로 한중일바둑협회는 더 이상 기계와 공식적으로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집단 선언을 하는 것이 5,000년 바둑의 영역을 지키는 마지막 기회이지 않을까? 바둑의 미학을 미지의 영역, 신비의 영역, 고유의 영역이라 아무리 주장해도 기계에 연전연패가 계속된다면 바둑 역시 체스와 마찬가지로 ‘신화’에서 ‘유물’이 되고 만다. 영웅의 도전이 생태계의 존폐보다 과연 더 중요할까? 할리우드 휴머니즘 영화가 CG 슈퍼히어로 영화와 말을 섞지 않는 것처럼 각각의 논리대로 가야만 고유한 생태계가 보존된다. 

미술에도 알파고와 같은 이들은 벌써 여럿 등장했다. 2013년 암스테르담고흐미술관은 후지필름과 공동 연구하여 고흐의 붓터치 레이어를 완벽히 분석하여 원작과 똑같은 3D 복제 작품을 전 세계에 판매 중이다. 최근 독일 튀빙겐대학에서는 본인의 사진 작품을 거장 작가들의 화풍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아직은 거장의 복제 단계라서 그런지 파급효과는 미미하다. 게다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창작미술인이 꽤 경쟁력 있는 직업군으로 분류되는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보도가 위안은 되겠지만, 대다수 예술가는 과연 공감할 수 있을까? 정말 미래의 인공지능이 시각예술에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위협만 극복하면 거의 다 해결된다는 것이 아닌가? 예술 생태계의 폐쇄적인 구조, 승자독식의 관행, 비효율적 프로세스 등 예술의 창궐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타파한다면 완벽한 생태계에 미리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 영화와 바둑에서 보듯이 리더의 결정대로 생태계의 운명이 바뀐다. 바야흐로 알파고 시대를 맞아 시각예술의 리더들은 어떤 의견을 수렴하고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그리고 그 영향으로 시각 예술 생태계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 강철(1972- ) ‘서울포토 2016’ 디렉터, 『사진연감』,『KREATIVE』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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