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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Woven Gold

알리

2016년 1월 초, LA 녹음일정을 마치고 반나절의 자유시간이 주어진 것은 해외 스케줄을 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케줄을 하면서 그런 시간이 있을리 없었다. 컨디션 조절 하느라 거의 호텔에 머물거나 스텝들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동선으로 쇼핑하거나, 지역의 풍경을 보거나 맛집을 찾아가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단체에서 벗어나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반나절의 시간이. 단번에 전시회 관람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 국립극장, 현대미술관, 예술의전당이 나의 놀이터였기에 공연장 뿐만 아니라 박물관이나 전시회는 나에게 익숙한 장소이다. 특히, 전시회는 어린 내게 고요함 속에 깨달음의 맛을 알게 하였다. 활동 이후, 발걸음이 뜸해져 직접 찾아가 감상하는 일은 1년에 한 두번 뿐. 거의 인터넷으로 관심 있는 그림들을 저장해놓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팔을 쭈욱 뻗었을 때 손끝에 닿을만한 위치에 있는 그림을 감상하는 쾌감을. 남들과 다른 보폭으로 다른 시각으로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그림을 해석하는 일이 나를 얼마나 편안하게 만드는지. 그것은 컴퓨터 모니터로는 찾을 수 없는 원작의 섬세함, 내 몸의 솜털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걸 깨닫게 하고 그로 인해 나만의 심미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The Entry of Alexander into Babylon(detail)>, 1676, design by Charles LE BRUN, woven at the Gobelins Manufactory, Paris, wool, silk, and gilt metal-and silver-wrapped thread. 

Courtesy of and ⓒLe Mobilier National. Photo by Lawrence PERQUIS


게티센터로 가보니 ‘Woven Gold’라는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태양왕 루이 14세 때 금실, 은실과 값비싼 색실을 사용하여 제작한 태피스트리전이다. 한국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이 태피스트리는 17세기 유럽에서 왕궁과 귀족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럽고 화려한 예술품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최고의 예술품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초대형 태피스트리의 등장에 시선을 압도당했다. 작품 앞에서 인간인 내가 손바닥만해졌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고, 당시에 이것을 만들 생각을 한 사람과 만든 사람들을 생각하니 왠지 모를 존경심까지 느껴졌다. 다음은 엄청난 크기에 반해 굉장히 정교한 디자인과 수백 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생생한 색감에 놀랐다. 포도알 하나, 꽃잎 사이사이의 음영은 도저히 직물이라 보기 어려웠고, 강렬한 붉은색과 파란색, 금색 세 가지 색상은 국왕의 위엄을 보여주듯 작품마다 강조되어 빛났다. 이러한 프랑스의 기술력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상 또한 전시장 안 코너에서 상영하고 있었는데 영상 속 그들의 장인정신에 또 한번 감탄하였다. 색을 만드는 과정이나 한 땀 한 땀 사람의 손으로 제작하는 것이 전통방식 그대로. 다루는 기계만 발전하였지, 중심부는 여전히 사람의 손을 탔다.


그런데 애석한 점은 이 모든 놀라움이 인쇄물로는 담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190cm의 장신인 사람이 1cm 정도 되는 개미가 된 것인데, 압축된 작품은 빛나지 않았다. 그러나 글과 함께 실린 태피스트리를 보면 ‘이보다 더 얼마나 훌륭하단 말인가’라고 말할 것이다. 직물공예라고 말하기 전까진 ‘그림’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수집가 루이 14세’, ‘상속자 루이 14세’, ‘후원자 루이 14세’ 총 3부로 나눈 전시에서 태양왕이 사치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는 걸 느꼈다. 이토록 아름다운데 무엇이 아까울까. 고급실 중에서도 금속제 실을 사용하였고, 빛바랜 흔적조차 없으니 얼마나 광이 나는 색실을 사용했을까. 물론 보존을 잘한 후대의 노력이기도 하겠지만, 음악에서도 요리에서도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재료가 좋으면 어떻게 만들어도 좋다. 기억에 남는 것은 예수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나는 제자들을 그린 작품과 알렉산더대왕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어진 작품, 그리고 가장 많았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알렉산더대왕을 그린 그림은 스케치와 그림을 함께 전시하여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는데, 스케치와 그림보다도 태피스트리가 더 아름다워 황홀경을 맛보았다. 알렉산더대왕을 호위하던 군사가 탄 말의 엉덩이가 실제 말의 엉덩이를 보듯 탐스러웠다. 


전시회를 보러 갈 때면 적어도 다 본 후 식사를 하며 같이 온 지인과 열띤 감상평 후 한 번 더 보곤 한다. 그러나 이번엔 게티센터에 다른 전시도 봐야 했기에 다시 볼 수 없었다. 또 한번 느끼고 싶다. 압도당하고 싶다. 거대한 태피스트리의 자태에.



알리(1984- ) 상명대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과 재학. 제2회 홍콩아시안팝 뮤직페스티벌 대상(2012) 수상. 한국소비자포럼 홍보대사(2012). 선플달기운동 선플운동본부 홍보대사(2012). KBS2TV 불후의명곡 다수 출연. <365일>, <지우개>, <펑펑>, <내가, 나에게> 등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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