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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까치호랑이그림(虎鵲圖): 까치와 호랑이, 그들의 관계는?

천진기

동물민속을 공부하는 필자는 동물 관련 미술품을 대할 때면 언제나 저들이 실제 자연 속에서 사는 모습은 어떨까? 그리고 인문학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해석이 될까 등을 동시에 보고자 노력한다. 이 글은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림 중 가장 많고 흔한 까치호랑이 그림에서 호랑이, 까치, 소나무를 생태학과 인문학에서 각각 어떻게 읽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로 이어지는 우리의 옛날 이야기 속에는 으레 호랑이가 흥미를 더해주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힘세고 날래지만, 한없이 어리석어 사람에게는 물론 토끼나 여우, 까치 등 덩치가 작은 동물에게도 골탕을 먹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잘 발달되고 균형 잡힌 신체 구조, 느리게 움직이다가도 목표물을 향할 때의 빠른 몸놀림, 빼어난 지혜와 늠름한 기품의 호랑이는 산군자(山君子),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영웅(山中英雄) 등으로 대접받는다.


'까치와 호랑이 둘 사이는 어떤 관계인가요? 호랑이는 소나무 아래 앉아 있기를 좋아합니까? 까치는 당연히 나무 위에 앉기를 좋아하겠지요?' 야생동물연구자에게 필자가 이런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의외로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호랑이 사냥꾼은 호랑이를 먼저 찾는 것이 아니고 까치, 까마귀를 먼저 찾는다. 최고의 사냥꾼 호랑이가 먹고 남은 것을 숲의 청소부인 이들이 먹어 치운다. 까치, 까마귀가 주위를 빙빙 날면 가까운 곳에 호랑이가 있다는 것이다. 호랑이와 까치는 친한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백두산 호랑이는 추운 북쪽 산악지역에 주로 서식한다. 겨울에 눈이 내려도 중간 크기 나무 숲 밑은 눈이 깊게 쌓이지 않아 이동하기가 쉽다. 그래서 눈이 많이 쌓인 겨울날 호랑이는 큰 나무 숲보다는 움직임이 용이한 중간 크기 나무 숲을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까치, 까마귀를 포함해 새들은 쉴 때 반드시 나무 위에 앉는다. 그것도 먹이가 가까이 있는 나무 위에 앉는다. 좀 생뚱맞은 이야기이겠지만, 까치호랑이그림은 사냥으로 배를 채운 호랑이가 소나무 숲 밑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쉬고 있고, 남은 찌꺼기를 먹으려는 까치가 소나무 위에서 절호의 기회를 엿보는 장면을 그린 것은 아닐까? 모든 그림은 각 요소들이 전혀 새로운 상황의 조합이 아니라 자연생태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동물그림은 더욱 그러하다.


이 그림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호랑이는 산신령을, 까치는 기쁜 소식을, 소나무는 장수를. 사람들은 까치가 신의 뜻을 호랑이에게 전하는 모습이고, 이 호랑이는 까치가 전해준 신의 뜻을 쫓아서 행동하는 신의 심부름꾼이라고 설명한다. 두 설명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 까치호랑이그림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데 분명 일조를 한다.


<남원 범바우>


필자가 현장에서 만난 최고의 호랑이 석상(石像)은 전북 임실군 신평면 호암리 범바우이다. 범바우는 이빨을 드러내놓고 웃는 얼굴 형상이 매우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맷돌처럼 생긴 동그란 얼굴, 살짝 돋은 도톰한 귀, 무서운 표정 대신 환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호랑이가 틀림없다. 호랑이는 수풀 속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채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데, 웃고 있는 표정이 해학적이다 못해 해맑은 어린이의 표정을 연상케 한다. 과연 이 멋진 범바우를 조각한 석수장이는 호랑이를 직접 보고 만들었을까?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과 예술적 감각으로 만들었을까? 만약 호랑이를 직접 보았다면 당대 최고의 돌 조각가라도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범바우는 지역의 문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석수장이의 예술적 상상력이 빚어낸 문화유산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형성된 호랑이에 대한 관념은 현재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랑이는 현대 도시와 백화점에서도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고 있다. 용맹성·권위성을 상징하는 호랑이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동물 가운데 하나로 등록상표, 상품, 캐릭터 등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



천진기(1961- ) 안동 출생, 안동대 학사, 영남대 석사, 중앙대 박사,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를 거쳐 현 국립민속박물관장.「한국 띠동물의 상징체계 연구」(중앙대 박사학위논문, 2001),『한국동물민속론』(민속원, 2002),『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서울대출판부, 2008)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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