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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길 위에서 알게 된 미술

장사익

“새우마냥 허리 오그리고 뉘엿뉘엿 저무는 황혼을 언덕너머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 

얼마 전에 있었던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의 기념행사에서 그의 시 <황혼길>을 가지고 노래를 불렀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지만 우리 모두 끝이 있는 길 위를 걷고 있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일과 사람이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른다.


모두 어렵던 1980년대 시절, 출퇴근시간에 안국동 걸스카우트 건물에서 종로2가로 인사동 골목을 오고 갈 때였다. 그 시절에는 더 많은 화랑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화랑 안에 걸린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길을 오간지 6개월 만의 일이었다. 항상 다니던 길에서 슬쩍 보던 그 그림이 왠지 모르게 새롭게 느껴진 것이다. 화랑 안에 들어가 이 그림이 누구의 작품인지 물어보았다. 청전(靑田) 이상범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작품이 너무 좋아 “이거 얼마래유?” 물어보았는데, 당시 천만 원이 넘는 가격에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중국의 장다첸(張大千, 1899-1983)의 폭포그림을 보기도 했고, 여유가 있을 때면 인사동 화랑들과 세종문화회관, 서울갤러리 등을 찾아다니곤 했다. 부모님의 제사를 지낼 때면 모작이지만 추사 김정희의 글과 그림을 병풍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미술의 아름다움과 그 추구하는 내용을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


예술의 겉모습만 보면 하찮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아래는 부단한 노력이 숨어있다. 언젠가 피카소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그림 속 인물의 눈을 어디에 그릴까 고민하는 그 모습에서 천재라 알려진 그 사람도 작품을 완성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이제는 어떤 독재자가 나타나 그의 그림을 모두 불살라 없앤다 해도 그의 예술세계는 인류에게 영원한 유산으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또 故이두식 선생님과 돌아가시기 얼마 전 식사를 같이할 일이 있었는데, 추상화를 그리기 전에 데생으로 그림의 기초를 다진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주진스, <Calligraphy principle>, 2007, 캔버스 위에 오일, 180 x 160 x 10 ㎝.


2010년, 아내가 부산 갤러리604의 도움을 받아 서울 종로구 홍지동 높은 곳에 갤러리 스페이스홍지를 열면서 미술과 미술인들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이우환 작가와 같은 물파(物派)계열의 작가라고 들은 일본 호리코사이(堀浩哉, 1949- )와 삽으로 물감을 이겨 그린 중국의 주진스(朱金石, 1954- ), 또 한국의 서용선, 김호득, 최병소 작가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쁜 시간이었다. 주진스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보름 정도 기도를 하고 그린다고 한다. 아라리오베이징에서는 퍼포먼스로 4m에 가까운 페인트벽을 돈만 쫓아가는 자본주의를 깨뜨린다는 의미로 차로 들이받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 중국, 일본의 유명미술가들을 갤러리에 초청하여 전시와 행사도 열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지속적인 지출은 큰 부담이 되었다.


혹자는 마음이 몸에서 나오면 꽃이 된다고 했지만, 나는 몸 속 마음이 밖으로 나와 맺히면 그것이 음악과 미술이 된다고 본다. 음악은 들으면서 흐르는 것이라면 미술은 보이는 것으로 남는다는 차이만이 있다. 음악인과 미술인의 차이는 자신의 마음을 오랫동안 어떻게 내놓았는지로 구별되는 것일 뿐이랴.



장사익(1949- ) 충남 홍성군 출생. 선린상업고 졸업. 여러 직업을 거쳐 1992년 태평소연주자로 국악계 입문, 1994년 1집 ‘하늘 가는 길’ 발매 후 2014년까지 총 8집 발매, 1995년 KBS 국악대상 대통령상, 2006년 국회 대중문화 미디어대상 국악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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