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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카라바지오, 성모의 죽음

김형진

나는 청년시절에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때 나는 처음 와본 루브르박물관의 전시장들을 그저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면서 건성으로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그만 어떤 커다란 그림 앞에 나도 모르게 멈추어 버렸다. 비록 미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금방 알 수 있었는데 바로 그 의미의 불편함과 낯설음이 나에게 어색하게 다가왔다. 이 작품은 가톨릭 신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모 마리아의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중세에서 마리아의 승천을 그린 많은 그림에서는 마리아가 천사들에 이끌려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밝고 우아하게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는 정말 축복 속에 승천했을까? 누구나 한 번 쯤은 의심을 품었을 이 질문에 대해 17세기 이탈리아의 괴짜 화가 카라바지오(Michelangelo Caravaggio, 1571-1610)는 우리에게 친숙한 영광과 기쁨의 성모승천 이야기와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해준다.


카라바지오, <성모의 죽음>, 1601-1606 ⓒLouvre, Paris


이 그림에는 마리아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부스스한 머리의 그녀는 약간 비만한 체격으로 맨발이 침대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그림의 왼쪽 아래에 모인 남자들은 모두 노인들인데 숫자로 보나 나이로 보나 딱 봐도 그들이 예수의 제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모와 성도가 나오는 이 그림에는 성모 승천에 따른 영광이나 기쁨은 없고 오로지 지독한 슬픔과 가슴이 에이는 고통이 느껴진다. 하기는 아무리 아들이 구세주라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 아들이 직업도 없이 떠돌다가 결혼도 하지 않고 나이 서른 셋에 처형되었다는 것은 보통의 엄마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마리아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다 큰 아들마저 잃었으니 그 이후에는 생계를 잇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라서 젊은 시절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대해 ‘The End’가 나온 뒤에도 삶이 계속된다. 나는 어린 시절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를 읽고 감동을 받았는데(지금도 그 때 거금을 주고 산 원서를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그 뒤 작가가 후편격인 『올리버스토리』를 통해 남자 주인공 올리버가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썼을 때 그 책을 읽고 주인공에 대해 무척 실망하고 분개했었다. 순진한 마음에 사랑은 영원한 것이므로 올리버가 평생을 그저 백혈병으로 죽은 부인 제니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탓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나는 점차 빛나는 젊음이 가고 나면, 이윽고 지나간 옛 사랑이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되며 때로는 사랑이나 자존심 따위는 사치로 생각될 만큼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슬픈 노년이 길게 계속되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제 이 그림이 더 이상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성모의 죽음과 승천을 오로지 기쁘고 영광된 분위기로 묘사한 많은 종교화들보다 이 그림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어쨌든 이 그림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카라바지오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어쩌면 카라바지오는 이 그림을 그릴 때,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나서 많은 자식들을 키우느라 힘겹게 살아갔던 자기 어머니의 슬펐던 죽음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천재 화가 카라바지오는 당시 중세 이탈리아 사회의 위선과 숨막히는 질서에 좌절했는지, 다른 화가들처럼 얌전히 부자들이나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살아가는 대신 음주와 폭행, 심지어 살인으로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객사함으로써 고단한 인생을 끝냈다고 한다.



김형진(1962- ) 미국변호사, 서울대 경영대학, 미국 UCLA 경영대학원, 미국 IIT 법과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법률자문, 백남준문화재단 감사, 연세대 및 KAIST 겸직교수, 서울미대 강의,『미술법』(메이문화, 2011) 등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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