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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피리 부는 소년, 만종, 루벤스와 고흐

정진석

초등학교 교실 복도 맨 끝 벽에 까만 윗도리에 붉은 바지를 입은 소년이 피리를 부는 그림이 걸려있었다. 그 그림이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이라는 사실은 세월이 한 참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어떤 연유로 그 그림이 초등학교 복도에 걸리게 되었을까 짐작이 안 가는 일이다. 하도 오래전 일이니 어쩌면 내 기억의 왜곡이거나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내 머릿속 지워지지 않은 잔상(殘像)으로 또렷이 남아 있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나는 소년이 부는 피리 소리를 타고 먼 나라로 떠나는 상념의 나래를 펼쳤다.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면 떠오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련한 추억 속 명화이다. 


에두아르 마네, <피리부는 소년>, 캔버스에 유채, 161 x 97 cm, 1866, 오르세미술관 소장.


밀레의 <만종>은 우리 집 안방에 걸려 있었다. 넓지 않은 방 한쪽 벽은 옷장이 놓여 있었고 그 맞은편은 부엌과 통하는 작은 문, 그리고 어머니의 경대가 놓여 있었다. 안쪽 벽은 미닫이 다락문이었다. 방안에 유일하게 남은 공간은 부엌과 통하는 작은 문 위 천정 사이, 액자에 그림 두 장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하나는 나무와 호수가 있는 풍경화. 노란 색조가 깔려 있던 것으로 보아 초가을 풍경이었던 것 같다. 누구의 작품인지 이제 와서 전혀 짐작이 안 되는 그림이다. 그 바로 옆에는 유명한 밀레의 <만종>이 걸려 있었다. 누가 그린 그림인지, 어떤 명화이며, 무엇을 의미하는 그림인지 식별할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석양녘에 부부가 들판에 서서 경건한 자세로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다. 6·25전쟁 전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다. 그 그림들은 이제 어떻게 되었는지 행방조차 알 수 없게 되었을 정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명화를 감상할 소양이 없던 나이에 복제된 그림에 대한 나의 인상은 사실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을 고려하더라도 나의 머리에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주관적인 회상은 확실하게 남아있다. 


작품을 보지 못한 가운데 흠모했던 화가도 있다. 독일 태생 벨기에 화가 루벤스였다. 만화가 김의환의 그림 이야기 책 『플란더스의 개(A Dog of Flanders)』를 읽으면서 루벤스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막상 그림을 볼 기회는 없었다. 영국의 여류 소설가 위다(Ouida)의 작품을 김의환이 그린 그림책이었는데, 가난한 소년 ‘네로’가 교회당에서 그가 동경하는 루벤스의 그림 아래서 사랑하는 개 파트라슈를 껴안고 얼어 죽는 장면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성인이 된 후에는 서양 여러 나라의 유명 미술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영국의 내셔널갤러리,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이었다. 그밖에 여행을 갈 때면 독일, 스웨덴, 스위스 같은 나라의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어릴 때에 인쇄가 조잡한 책이나 복제품으로 보았던 미술품들을 원화로 볼 기회였다. 가장 인상적인 미술관은 네덜란드 브뤼셀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미술관이었다. 입체감이 느껴질 정도로 덕지덕지 덧칠한 유화물감에 강렬한 색채가 풍기는 그의 작품들은 아마추어 감상객의 눈을 압도했다. 나는 작품 중에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인생의 운명과 하느님의 영원한 섭리가 강력한 터치 속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젊은 시절 부족한 여행경비를 아껴가며 거의 무전여행에 가까운 여정 중 보았던 그림이라서 더 깊은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시절의 꿈은 화가였다. 과외활동도 미술반이었지만 그림 그릴 물감이나 도화지도 귀한 전쟁 기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의 꿈을 접으면서 소설가가 되려 했지만 그것도 재능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 시절까지는 그래도 가을에 열리는 국전(國展)은 빠지지 않고 관람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그림과는 먼 생활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린 시절에 접했던 그림만 뇌리에 영원히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정진석(1939- ) 서울대 대학원 석사, 영국 런던대 박사. 한국기자협회 편집실장, 관훈클럽 사무국장을 거쳐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현 언론정보학부) 교수 역임, 언론중재위원. 인촌상 언론부문 수상, 『언론조선총독부』(커뮤니케이션 북스, 2005),『전쟁기의 언론과 문학』(소명출판, 2012) 외 저서 17권, 공저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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