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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그림 앞에 있으면 행복한 사람

임종수

한번은 건축가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만약 다시 살게 된다면 갖기 싫은 직업 셋, 하고 싶은 일 셋을 말씀해보십시오.” 너무 황당해서일까?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첫째는 여행의 삶, 둘째로는 기왕이면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그림을 그려보고 싶고, 세 번째는 여기가 건축가의 모임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집 설계를 해보고 싶습니다.” 거기서 하고 싶은 일로 내가 꼽은 세 가지다. 그러니 내가 짚은 것은 여행하는 화가인 셈이다.


임종수, <개화산과 큰나무>, 2013, 종이에 마커펜+색연필, 31 x 23 cm.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보는 것뿐 아니라 그리는 것까지도 좋아한다. 그러나 누가 그림에 대해서 물어보면 ‘몰라요’ 그렇게 대답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자주 그림을 보러 다니고, 그림을 보며 그린 이의 마음 읽기를 즐긴다. 제멋대로 하는 감정이입이겠지만 그림을 보며 그 화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가 많기도 하다. 그러니 그림을 보게 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때로는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경우에도 무언가 말하고 싶은 그의 말을 애써 들어보려 한참을 서 있고는 한다. 그게 나를 만난 그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림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행복하다. 그러고는 이내 잊어지겠지만 작가의 이름을 마음에 담고서는 자리를 뜬다.


나는 목사다. 그런데 교육의 수준을 놓고 본다면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그림 쪽은 좀 허술한 편이다. 또 설혹 관심을 가진다 해도 비교적 평면적인 시각에 머무르는 모습이었다. 사역의 특성상 그렇게 되었겠지만 목사인 나는 그 점을 솔직히 시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쉬울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같이 다닐 때가 많기 마련이어서 겪은 안타까운 추억도 있다.


이십 년 전 에르미타주박물관(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에 들렸을 때다. 책에서만 보던 그림들로 가득한 방은 한 마디로 환상적이었다. 어느 방에서는 하루 종일토록 살아도 되지 싶었다. 아니,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리더가 “ 통과!”하면 그만이었다. 기독교의 이런 경향성은 목회자만의 얘기는 아닌 듯. 기독교 마당의 분위기 또한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기독미술인의 그룹전에 가서 그런 열악함을 느끼기 여러 번이다. 그저 교회당이나 십자가가 등장하는 그림이나 풍경이 기독이란 이름을 단 이유이고, 특징으로 보였다. 사실이지 그 마음의 환희를, 고뇌와 갈등을 그리기로 하면 쏟아내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을까? 기독교에 몰입하면 예술성이 떨어지더라는 누구의 혹독한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서양미술의 저변은 기독교가 터줏대감인데 참 아이러니하다.


임종수, <삶-1>, 1990, 사포지에 아크릴릭, 26 x 20 cm. 


목회(牧會-司牧)의 현장에서의 내가 유난스럽게 예술성을 추구한 것은 그에 대한 역반응일 지도 모른다. 교회당을 건축할 때에도, 교회의 캘린더나 다른 인쇄물을 만들 때에도 심미적인 접근에 힘썼고, 따라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렇게 그린 그림들이야 당연히 실용성이 곁들여있으니 순수함으로의 자리매김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삶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나에게는 실용과 순수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그림을 보면서도 행복해할 만큼 어리석다. 앞서 모임 이야기를 하며 ‘싫은 직업’을 말했는데 나의 하기 싫은 일 두 번째가 ‘목사’였다. 그리고 그것은 진심이다. 그러나 목사의 삶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다. 결코 새 삶이 주어질리 없지만, 항상 새 길을 찾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 준 답이었으니까. 



임종수(1941- ) 목사, 큰나무교회 원로, 월간「전시계」편 집장(‘76-77) 역임, 현재- CBS TV ‘성경사랑방’ 진행, 교회건축문회연구회 회장, 청현재이캘리그라피 고문, 저서『좋은 교회로 가는 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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