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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미술의 대량생산

유걸

나는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 없다. 미술품뿐 만이 아니라 무엇이던 귀중하다고 소장하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다못해 내가 늘 만들고 있는 건축설계의 과정에서 나오는 모형이라든지 또 스케치들도 늘 휴지통으로 향한다. 건축주에게 보여주려고 돈을 좀 들여서 만든 모형들도 어느 정도 쌓인다 싶으면 모두 없애버리고 만다. 언론사나 매체에서 나와 내가 한 건축을 소개하면서 스케치를 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경우 난감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많다. 부친께서 일찍 우에노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신 연고로 부친이 교편을 잡고 계신 학교의 도서실에는 미술전집이 늘 마련되어 있었다. 집이 학교 속에 있거나 학교와 가까이 있어서 이 미술전집은 차례로 우리집을 드나들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36권 분량의 되는 세계미술전집을 보면서 일본어를 읽게 되었는데 그림에 있는 작가명을 읽으면서 그 작가명의 일본어를 읽는 식으로 배운것이었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내가 현대건축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느낌의 시작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을 무척 좋아 하는데 그의 작품은 가질 수가 없었고 부르델(Emil Antoine Bourdelle, 1861-1929)의 <활을 쏘는 헤라클래스>(1909)의 축소 모조품을 가지고 있다. 미술품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지만 축소 모조품은 내 일상의 생활 속에서 굴러다녀도 부담이 없어 진품보다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Tye Yang(鉄揚), <강과 여인>


하나 더 있다면 중국 Hebei(河北)성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원로화가인 Tye Yang(鉄揚) 선생의 <강과 여인>이라는 그림이다. 거실에 걸려있는 이 그림도 그 분이 베를린에서 전시회를 할 때 한정판으로 인쇄한 인쇄본이다. 그림 속의 검은 바위와 푸른 물 그리고 목욕하는 하얀 여인들이 깊은 색들로 채워져 늘 보고 있으면서도 새로 보는 맛이 있는 그림이다. 사실 값진 것을 소유하는 것은 나에게는 부담이다. 값싼 것이라 부담이 없고 또 손상이 되어도 다른 곳에 원본이 있어 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연유이건 요즘 그림 값들은 꽤나 비싸 보인다.


내가 건축을 택한 동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건축을 하면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 같아서 건축을 택했던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책들을 편람하면서 대학에서나 강의를 들을 수 있던 한국 조각의 대부이신 김경승 선생님의 미술지도를 받았다. 물론 이 분은 미술시간에 소조를 하는 것을 가르치셨고 나는 방과 후 학교 조각반에서 많은 시간을 흙과 씨름을 하며 보냈었다. 미술대학에 가서 조각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미술을 하신 부친의 재력이 별로이신 것을 생각할 때 미술대학은 나에게 가난의 선택으로 보여서 그래도 쉽게 축재를 하여 내가 하고 싶은 조각을 해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건축을 택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각을 해서 좀 재력을 키우고 건축을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었나 생각이 되기도 한다. 


어렸을 적 책 속에서 꿈꾸던 현대미술을 건축에서 다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이 미술품의 소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건축이나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이 지향하던 것이 건축을 귀족들의 소유에서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것이고 귀족들의 전유물인 고급예술을 일반인들도 가질 수 있도록 작품을 양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노동자들의 건축이나 양산된 미술품은 또 초고가의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나는 요즘 건축주 없는 건축을 생각한다. 그리고 건축가 없는 건축을 생각한다. 건축주가 있는 건축을 설계하여 짓는 것은 고가의 집이 될 것이 뻔하다. 건축가 있는 건축 또한 그것이 일반인들의 소유가 되기 위해서는 고가가 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보통사람들 모두가 자기들이 좋아 하는 건축을 스스로 선택 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은 훨씬 행복해질 것 같다. 그리고 건축주가 있지 않더라도 건축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건축가들은 훨씬 더 건축을 창의적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걸(1940- ) 서울대 건축과 졸업. 미국건축사(AIA). KBS선정 한국 10대 건축물 선정(밀알학교). 1998년 이후 3년 연속 미국 건축사 협회상, 김수근 건축상,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 서울시 신청사 설계 현 아이아크건축 공동대표, 울산대 건축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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