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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성찰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역사

황정인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시국을 견뎌내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하면서, 경찰 폭력을 포함한 각종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시위와 민권 운동이 범지구적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기관 내 조직문화에 뿌리박혀 있는 인종차별, 소장품 구성과 작품, 전시의 검열, 불평등한 인력배치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문 인력의 보이콧이나 조직 내부의 개혁을 옹호하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이렇게 세계 각국의 기관들이 흑인 인권 수호와 인종차별 반대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독립과 흑인 해방 운동사의 주요 거점 도시이기도 했던 필라델피아의 아프리칸아메리칸박물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필라델피아 아프리칸아메리칸박물관(AAMP) 입구 전경. 사진ⓒ황정인


1976년에 설립된 필라델피아 아프리칸아메리칸박물관(The African American Museum in Philadelphia, 이하 AAMP)은 스미스소니언 협회와 연계한 흑인 역사 및 문화 전문 박물관으로, 미국 독립과 흑인 노예 해방,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불리는 자유의 종(Liberty Bell) 근방에 위치해있다. 미국의 주요 미술관, 박물관이 백인 중심의 사회, 시각에서 서술된 문화예술의 역사라고 한다면, AAMP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역사적 사실과 증언을 작품과 자료로 생생하게 전하는 필라델피아의 유일한 기관으로 손꼽히면서 그 의미와 역할을 공고히 하고 있다. 특히 필라델피아는 18세기부터 시작된 흑인 노예 해방 운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흑인의 시각에서 서술된 역사적 증언과 기록의 수호, 흑인 문화의 계승 정신을 반영한 AAMP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AAMP는 박물관 프로그램의 운영 예산이 미국의 도시 지자체 예산으로 모두 지원되는 첫 흑인 역사 전문 박물관이기도 하다.

이곳의 전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서사와 미국의 탄생 역사를 다룬 상설기획전, 또 하나는 다양한 시각예술작품과 시청각 자료, 유물 등을 통해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특별기획전이다. 총 4개의 전시관을 보유한 AAMP는 무엇보다 박물관이 속한 도시와 이주의 역사, 동시대 이슈의 연결성을 전시 기획의 기본 방향으로 삼는다. 흑인과 관련하여 현대 미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쟁점을 과거, 미래와의 복합적인 관계 안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유지하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동시대성과 지역성, 역사성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상설기획전으로 열리고 있는 ‘대담한 자유: 1776 - 1876년 필라델피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이러한 기관의 정체성과 비전을 반영한 전시로, 필라델피아에서 미국의 탄생과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주요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업적에 대해 조명한다. 아카이브와 이미지 자료로 100년의 역사를 타임라인을 시각화한 인포그래피, 18세기 필라델피아의 흑인 인권 사상과 문화 전파를 위해 앞장섰던 대표 위인들의 삶과 철학을 다룬 영상, 어린이를 위한 참여형 설치미술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별 기획전으로는 미국 포토저널리즘을 대표하는 흑인 사진작가 잭프랭클린의 박물관 컬렉션 중 필라델피아 민권 운동 시기의 청년활동가들의 모습을 다룬 사진전이 온라인으로 열리고 있다.

오늘날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 아래, 해외의 많은 문화예술기관이 그들의 신념과 의지를 다시금 공표하면서, 각종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무경각심이 초래한 과거의 행보를 반성하고, 앞으로의 행보를 수정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역사의 이면을 균형 있는 시각으로 조명, 연구하는 AAMP의 이러한 행보는 다양한 인종, 다채로운 문화권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점점 더 요구되고 있는 국내 상황 속에서 문화예술기관들이 기관 운영에 있어서 적극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고착된 문제를 변화시키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에 대한 성찰과 반성, 실천은 유의미하다. 국내 문화예술기관에서도 문화예술계의 글로벌 움직임에 부응하는 자발적인 의지 표명과 실천, 미래를 위한 준비가 하루빨리 이어지길 바란다.


- 황정인(1980- ) 홍익대 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런던 골드스미스대 대학원 문화산업과 석사. 전 사비나미술관·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현재 비영리연구단체 미팅룸 대표·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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