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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동아시아 미술가들의 저항의 연대 - ‘광주·제주·OKINAWA 저항의 표현전’

이나바 마이

일본 남쪽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오키나와. 원래 류큐왕국이란 나라였으며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오키나와는 제주도와 유사점이 많다. 이 섬에서 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인1945년 치열한 오키나와 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투로 당시 주민의 1/4이 죽었다고 한다.

올해 오키나와 전쟁 75주년을 기념해 ‘오키나와 아시아 국제평화예술제 2020’이 기획되었다. 원래 오키나와현립미술관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사키마미술관으로 전시장을 옮겨 8월 7일부터 한 달간 ‘광주·제주·OKINAWA 저항의 표현전’을 개최하고 있다.



홍성담의 <새벽Ⅱ>(좌)와 마루키 부부의 <오키나와 전쟁도>(우)


사키마미술관은 오키나와 중부에 위치한 지구상 가장 위험하다고 불린 후텐마 미군기지에 딱 붙어 있다. 이 미술관에 가면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의 75%가 집중된 ‘기지의 섬’ 오키나와의 실태를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그린 <원폭도>로 유명한 마루키 부부의 <오키나와 전쟁도>가 상설 전시되고 있다. 그림(과거)과 기지(현재)를 통해 오키나와가 놓여 있는 문제의 역사적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이번 전시의 기반이 된 것은 ‘마부니 피스 프로젝트(Mabuni Peace Project)’다. 마부니란 섬의 최남단에 위치하는 곶으로 오키나와 전쟁 말기 미군에 밀려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주민들이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은 비극의 장소이다. 마부니 피스 프로젝트에서는 2015년 사진가 히가 토요미츠가 주도해 ‘평화와 진혼’을 주제로 전시를 시작했다. 작년에는 가혹한 전쟁과 학살을 경험하고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오키나와와 제주 그리고 대만을 연결한 전시를 열었고, 특히 제주 작가와는 수년 전부터 교류전을 하고 있다.

저항의 표현전에는 한국과 오키나와에서 각 2명씩 참가한다. 홍성담은 2005년 사키마미술관에서 열린 판화전을 계기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오월 판화가 소장되었다. 5.18 민중항쟁 40주년을 맞이한 올해 15년 만에 오월 판화 50점이 공개되었고, 또한 걸개그림 <새벽Ⅱ>(2005)가 <오키나와 전쟁도>와 나란히 전시되어 오키나와 전쟁과 광주민중항쟁이 미군에 의한 동아시아 전략의 연속 선상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육지 출신이지만 제주 작가로서 참여한 이명복은 2010년에 이주한 후 4.3사건을 비롯한 제주의 역사와 현실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려왔다. 제주도민이라는 이유로 잡혀 옥살이한 할머니를 그린 <나 죄 없습니다>(2020), 무장대 사령관을 주제로 한 <4월-이덕구 산전에서>(2020) 등 이명복의 작품은 제주와 오키나와의 역사적 배경의 공통점을 보는 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다카라 겐기는 계속해서 미군기지 문제를 주제로 작업해 온 작가이다. 후텐마기지 주변에서는 미군 관련 대규모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국제대학 헬기 추락>(2005)은 대학교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고를 그린 것이다. 다카라는 팝아트적인 작풍 속에 오키나와의 현실을 담아 주민들의 고통을 표현한다.

아라가키 야스오의 <분노의 오브제>(1967)는 베트남전쟁 당시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B52 전투기가 계속해서 출격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작품이다. 아연판에 곡괭이로 구멍을 뚫고 손도끼로 찢어발긴 또는 상처를 낸 이 작품은 전쟁 때문에 희생을 당한 오키나와가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는 전쟁의 본거지가 되어 있다는 모순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50년 전의 문제가 하나도 변함이 없이 현재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사키마 미치오 관장은 ‘사회 문제에 대해 함께 투쟁하는 한국과 오키나와 작가가 모여 민중의 근원적인 힘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문화교류다’고 힘차게 말한다. 또한 큐레이터 우에마 가나에는 4명 작가 모두 강한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 있으면서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으로 서로가 충돌하기보다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 조화야말로 광주와 제주 그리고 오키나와에 있어서의, 일제부터 미국에 이르는 동아시아 지배 전략의 희생과 아픔의 현실을 증명하는 저항의 연대라고 할 수 있다.



- 이나바 마이(1968- ) 광운대 부교수. 국민대 예술대학 미술이론학과 박사. 한·일 근현대미술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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