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는 뉴욕과 더불어 미동부지역의 미술현장을 형성하고 있는 주요 도시 중 하나다. 이곳에는 필라델피아미술관, 로댕미술관, 반스파운데이션, ICA필라델피아, 패브릭워크숍&뮤지엄, 필라델피아포토아트센터, 클레이스튜디오, 센터포아트인우드, 복스파퓰리 등 다양한 설립배경과 목적을 지닌 전문 미술기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중 반스파운데이션과 ICA필라델피아는 필라델피아미술관과 함께 근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대표 기관으로 도시를 방문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문화 명소다. 특히 이 두 기관은 미술품 감상과 교육의 필요성을 설립취지에 두고 기관 정체성을 확립해왔으며,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면서 지역의 미술문화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 하다.
지난해 강서경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던 ICA필라델피아의 입구 전경 ⓒ황정인
먼저 반스파운데이션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 미술사의 주요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벤저민 프랭클린 파크웨이의 미술관 지구에 위치해있다. 이곳의 설립자인 앨버트 C. 반스(Dr. Albert C. BARNES)는 의학을 전공한 컬렉터로, 생전에 약리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신약개발에 성공,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는 당시 철학자 존 듀이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 혹은 흑인 노동자들이 민주주의적 사고를 하고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하게 된다. 그는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이성과 감성을 균형 있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고 매일 두 시간씩 예술과 철학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인상파, 후기 인상파, 초기 모더니즘 시기 화가들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에 이르렀고, 1922년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도시 메리온에 갤러리를 겸한 주택을 지어, 그곳을 개인미술관이자 교육기관으로 운영하게 된다. 순수 미술 감상을 위한 실험적인 전시방식과 교육프로그램을 제시했던 그는 하루 500명으로 입장객을 제한하고, 미술관 외의 다른 장소에서의 소장품 전시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등 보다 효과적인 미술품 감상법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그의 사후, 반스파운데이션은 미술관 운영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2012년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기면서 보다 많은 관객과 손쉽게 만나는 기회를 마련했고, 작품을 일부 임대하거나 순회전을 개최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미술품 감상을 통한 계몽을 꿈꿨던 설립자의 유지는 작품의 정보를 최소화하고 감상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시 디스플레이, 다양한 연령, 배경을 지닌 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 개설과 장학사업, 미술에 대한 독립적인 시각과 순수한 감상법을 제안하는 홈페이지 소장품 색인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온전하게 계승되고 있다.
ICA필라델피아(이하 ICA)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캠퍼스에 자리를 잡은 현대미술관으로 1963년 설립되었다. 당시 건축학장으로 재직했던 홈즈 퍼킨스(Holmes PERKINS)는 학생들에게 문화예술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과 사건을 가장 효과적으로 소개하고, 감상과 교육을 통해 지성과 감성을 상호보완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방법으로 ICA 설립하기에 이른다. 설립 이후 ICA는 예술적으로 역량이 출중하지만, 인지도가 부족했던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교내의 많은 젊은 관객층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다. 앤디 워홀의 첫 미술관 개인전(1965년)이 이곳에서 개최되었으며, 사이 톰블리, 아그네스 마틴, 로버트 메이플소프, 비야 셀민스, 다미안 오르테가 등의 초기 작품들도 전시되었다. 국내 작가로는 조덕현(1995년), 차재민(2014년), 강서경(2018년)의 작품이 소개된 바 있다. ICA는 현대미술을 통한 일종의 교육 시설의 하나로 학교의 중심부에 자리하되, 새로운 관객층을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시대 미술문화의 흐름을 형성하는 필라델피아의 예술 허브중 하나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 황정인(1980- ) 홍익대 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런던 골드스미스대 대학원 문화산업과 석사. 사비나미술관·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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