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77)모호한 작가적 정체성의 그림자

구정원

Installation View, Frank BOWLING at Tate Britain 2019. Tate Photography, Matt GREENWOOD


지금 영국 현대미술계는 블랙 디아스포라 아트에 대한 관심으로 뜨겁다.

영국 현대미술에서 ‘블랙’이라는 단어는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alism)’와 연계한 ‘타자(Other)’ 혹은 ‘디아스포라(Diaspora)’를 대표하는 의미를 지닌다. 문화인류학자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학술적 연구를 토대로 한 블랙 디아스포라 아트는 그가 런던에 설립한 미술기관 ‘이니바(Iniva)’를 중심으로, 영국 3대 노예무역항 중 하나였던 리버풀의 ‘블루코트(Bluecoat)’아트센터, 그리고 ‘인터내셔널 큐레이터스 포럼(ICF)’ 등의 학술연구 및 전시 활동을 통해 점차 체계화되어 왔다. 지난 2017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개최되었던 영국의 ‘디아스포라파빌리온(Diaspora Pavillion)’은 이 오랜 노력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블랙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에 영국으로 이주한 윈드러시(Windrush) 이민세대로부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영국으로 이주한 예술가들을 1세대로 간주한다. 예술의 중심 런던에서 작가의 꿈을 펼치기 위해 이민 온 1세대 작가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하며 자신들의 작품세계에 그 어느 정치적, 인종적 패러다임이 결부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줄리앙 이삭(Julien ISAAC), 키스 파이퍼(Keith PIPER), 소냐 보이스(Sonia BOYCE) 등 영국사회에서 타자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이슈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민 2세대 작가들과는 대조된다.


Frank BOWLING portrait 2017 ⓒAlastair LEVY

바로 이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프랭크 볼링(Frank BOWLING)의 회고전이 테이트브리튼(Tate Britain) 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다. 가이아나(Guyana) 출신인 볼링은 1953년 19세의 나이로 런던으로 이주해 영국왕립미술대학(RCA)에서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게 된다. 영국 팝아트를 이끌었던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데렉 보쉬어(Derek BOSHIER) 등과 함께 수학한 볼링은 당대 영국 미술의 주된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등과 어울리며 어두운 사회의 국면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작가로서 인정을 받았지만 블랙 아티스트라는 영국의 정치적 프로파간다 안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 한계를 느끼고 1966년 뉴욕으로 이주한다. 볼링이 본격적으로 추상 미술 연구에 돌입한 것도 이 시기와 맞물린다. 지난 2017년 독일 하우스데어쿤스트에서 개최되었던 볼링의 회고전 ‘Mappa Mundi’를 기획했던 오쿠이 엔위저 (Okwui ENWEZOR)는 이 시기를 볼링의 작품세계 중요한 전환점으로 잡아 전시 안에 녹아내었다. 

1971년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개인전을 할 정도로 일찍이 작가로서 성공을 이루었으나 정작 본국인 영국에서는 85세가 된 지금에야 주류 미술기관에서 회고전을 갖는다는 것은 동시대 현대미술의 중심지이지만 한없이 보수적이기도 한 영국의 미술계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60년에 걸친 작품세계를 차분하게 담아낸 본 전시를 향해 오스카 무리조(Oscar MURILLO)는 작가의 업적이 전혀 보이지 않은 실망스러운 전시라 비판했다. 또한, 볼링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본전시가 자신의 작품세계에만 포커스가 되기를 바랐지만 여전히 자신의 배경이 전시적 명목의 일부가 된 점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53년 전 자신을 런던에서 떠나게 한 그 딜레마에 다시 봉착하게 된 셈이다.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과 그 안에서 창조된 작품과의 상관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 구정원(1975- ) 중국 상하이 두어룬시립미술관 국제협력 큐레이터, 영국 국제 큐레이터포럼(ICF) 펠로우. ‘Curating The International Diaspora’(2016-17, 런던, 광주, 바베도스, 마티니크, 샤르자), ‘أنا [ana] please keep your eyes closed for a moment’(2015-16, 샤르자), ‘Allegories of Shanghai’(2015, 상하이), ‘WOO:RI’(2012-13, 프라하) 외 다수 기획.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