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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미국의 예술가 재단: 오늘날의 유산을 생각하며

이선민



도널드저드재단 뉴욕 소호 외관
Photo Credit: Joshua WHITE - Judd Foundation Archives,
ⓒJudd Foundation, Licensed by ARS

미국에는 크고 작은 예술가의 재단이 있다.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유지 관리되고 있는 예술가의 재단과 미술관도 있다. 그 중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 재단과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1904-1988) 미술관은 작가가 생전에 건물을 직접 짓거나 리노베이션을 해서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관람객들과 더욱 특별한 교감으로 이어진다.

뉴욕 소호의 전철역 프린스 스트릿트(Prince st)에서 내려 스프링 스트릿트(Spring St)로 따라 걷다보면 코너에 진회색 아이언으로 된 5층 건물이 있다. 1층을 지날 때 시원한 창문 너머로 한 젊은 여성이 입구방향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들어오라 손짓한다. 버즈를 누르고 잠시 기다린 후 문을 열고 들어가 안온한 기운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안에서 손짓하던 여성은 나를 따듯하게 맞으며 집안 구석구석을 데리고 다니며 안내해준다. 그녀는 각 층을 다니며 부엌, 아이들 방, 서재, 그리고 개다 만 이불이 있는 침대까지 상세히 보여준다. 이곳은 다름 아닌 미국의 미니멀리스트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진 도널드저드의 재단이다.


저드 파운데이션은 도널드저드의 뉴욕의 생가였으며 현재는 비영리 재단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1968년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5층 빌딩을 개조해 작가의 작업실과 생활공간으로 썼고, 사후 2년 뒤 1996 년에 비영리 재단으로 등록했다. 도널드 저드는 1981년 텍사스 주의 사막 한편에 위치한 말파(Marfa)로 이주했고 그곳 또한 현재 비영리 재단으로 운영 관리되고 있다. 도널드 저드가 당시에 작업실에서 지내며 공간과 빛에 따라 작품의 위치를 지정해놓고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혹은 작품이 그 공간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존재하고 있도록 했다.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고 보존하기 위해저드 재단은 낙후된 공간은 리노베이션 하기를 결정했다.


1990년대 초반 도널드 저드는 건물 복구 작업을 시도하고자 건축가들과 엔지니어들을 불러 시도하고자 했지만 그 비용이 천문학적이라 이루어내기 힘들었다. 결국 2001년 저드 재단은 역사보존회(The National Trust for Historic Preservation)의 후원으로 리노베이션을 착수할 수 있었다. 2006년 저드 재단은 뉴욕 소호의 건물 개조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약 36점의 중요한 조각품을 경매에 올렸다. 그 판매가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경매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판매로 인한 2천만 달러(200억 원)의 수익은 재단의 영구 설치 지원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결국 약 15년간의 복구 작업을 마치고 2013년에 일반에 공개할 수 있었다.


현재 저드재단(Judd Foundation)을 방문하려면 약 한달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선금 미화 25불을 내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가야 한다. 재단 입구는 약속된 시간 10분 전에 문을 연다. 하지만 한 번에 최대 관람인원은 겨우 6명이다. 안내인은 지역의 예술가로서 자원봉사로 관람 안내를 해준다. 예술가가 설명해주니 작품이나 도구, 공간에 대해 더욱 심층적이고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1층에는 기획 전시 공간과 리플릿이 올려진 저드가 직접 디자인 한 선반이 있다. 진행 중인 기획전으로는 리차드 롱(Richard Long, 1945-)의 장소특정적 작업이 전시되어 있다. 테라코타 흙을 이용해 벽면 전체에 직접 작업한 것이다. 마주보고 있는 창가쪽 선반에는 재단리플릿과 화집, 최근에 출간된 책Donald Judd Writings이 올려져 있고 기념품 용도의 에코백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작가가 생전에 쓰던 부엌과 12인용 다이닝 테이블이 있다. 작가가 집적 만든 선반과 수납장 안과 위에는 작가가 생전에 쓰던 식기, 그릇, 주방용기는 종류별로 차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층계간 계단 사이에 작가가 소장한 아프리카에서 수집한 듯한 혹은 앤틱샵에서 구입했을 법한 오브제들이 있다. 3층은 작가의 작업 공간과 스틸로 된 대형 설치 작업이 있다. 작품제작을 스케치할 수 있는 책상과 설계용 종이가 놓여 있고 지금이라도 당장 스케치 할 수 있도록 연필이 날카롭게 깎여져 있다. 4층은 쇼룸 공간으로 작가가 디자인 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프랭크스텔라(Frank Stella)의 회화작품이 벽면에 설치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5층은 당시 개인 주거 공간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는데, 거실 한복판에 가족이 쓰던 넓은 매트리스, 당시 5살과 9살 되던 아이들을 위한 공간, 옷장, 옷이 그대로 있고 넓은 거실을 가로지르는 댄 플레빈(Dan Flavin)의 형광등 작업과 프랭크스텔라의 설치 작업이 있었다. 예술가의 작품 이외에 사용했던 공간을 둘러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성향과 예술에 대한 그만의 철학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들이 가지런히 정리만 되어 있을 뿐, 현재 살고 있는 누군가의 집에 방문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러한 특별한 감상을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관람객 수를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뉴욕의 소호 공간이 더욱 특별한 공간으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예술가의 재단이 변모하는 상업지구에서 지역을 보호하고 작가들과의 교류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고, 시간이 정지된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뉴욕은 부동산 가격이 점점 오르고, 지역은 상업 구역으로 변모된지 오래되었고 증가하는 관광객들이 거리에 가득 차 있어 지역색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예술가는 소호 지역에 1920년대 건물을 그대로 놔두어 그 지역색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후에도 옮기거나 모양을 바꾸지 않도록 했다. 공간은 작가의 작품을 보존하기 위한 공간이기 보다 건축,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서 작품 그 자체에 더 가깝다.


도널드 저드는 생전에 '현대미술작품 중에는 어느 특정한 장소에 전시해야 하고, 절대로 옮기지 말아야 하는 작품이 있다'라고 했다. 저드는 본인의 작품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대 작가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보존하고자 했다. 그가 사망하기 전 10년여 전부터 이 공간과 작업들을 어떤 방식으로 남겨놓을지에 대해 계획과 설계를 가지고 있었다. 뉴욕 맨하탄 소호의 한가운데에는 저드가 그의 작품과 함께, 댄 플레빈, 리처드 세라, 클레스 올덴버그, 존 챔벌레인 등 동료작가들의 작품들이 영구전시 되어 있다.


1970년대는 도널드 저드가 뉴욕에서 활동하다 이혼과 함께 돌연 텍사스 말파로 아이들을 데리고 간 시기이다. 한 때 뉴욕에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을 만들어주고, 수많은 식기와 12인용 테이블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에도 저드는 텍사스와 뉴욕을 오가며 활동했고, 그는 늘 내가 지낸 곳이니까 여기에 그대로 두거라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후엔 그대로 두기엔 여러 가지 문제로 복잡했지만, 재단 이사로 있는 두 예술가의 자녀는 리노베이션 후에 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두었다.




노구치 미술관 전경

뉴욕의 터줏대감으로 있는 또 다른 예술가의 재단으로 이사무 노구치의 재단 및 미술관이 있다. 노구치미술관(the Noguchi Museum)은 뉴욕 퀸스롱아일랜드시티에 위치한 작은 미술관이다.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작업실을 1985년 미술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노구치미술관과 정원은 조각가에 의해 건축설계부터 인테리어 가구까지 모두 디자인되고 생성되어 있고 그가 남긴 아카이브와 250여개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 설립 후 1985년 대중에게 제한적으로 개방했고, 조각, 건축 모형, 무대 디자인, 도면 및 가구 디자인을 상시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이사무노구치는 시인이었던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일본에서 보내고 청년기를 미국에서 보냈다. 일찍이 의대를 들어가려 했으나, 미술작가로 전향한 후 우연히 브랑쿠지(Constantin Brancusi, 1876-1957)의 조수로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이 후 일본에 머물면서 동양철학과 선()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그만의 조형언어를 형성했다. 그는 조각 이외에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는데, 무용가 마사 그라함(Martha Graham),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조지 발랜샤인(George Balanchine)의 무대디자인을 했고, 아카리 조명(Akari Light) 시리즈를 만들었고, 미국과 일본에 공공 조형물과 조각 공원을 만들었으며, (Knoll)과 허먼 밀러(Herman Miller)의 가구 디자인은 아직도 시장에 활발히 유통되고 있다.


뉴욕의 미술관은 이사무 노구치가 1971년 재단을 등록한 후 1980년에 본격적으로 정원미술관을 만들기에 착수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지막한 2층 건물에 정원과 건물 안 곳곳에는 작가가 직접 영구 설치한 작품들이 놓여있다. 당시에는 기능적인 미술관의 용도이기보다 예술가의 작품을 영구적으로 설치한 공간으로 미술관의 일반적 기능인 전시실이나 편의 시설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낙후된 시멘트 바닥이 꺼지고 나무로 된 천장이 갈라지고 오래전에 심은 나무 그늘이 정원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했다. 결국 리노베이션을 감행하기도 했다. 리노베이션 기간은 2년반의 기간과 130억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리노베이션으로 인해 새로운 전시실과 교육실이 생겼고, 따로 분리되어 있던 두개의 건물과 정원을 연결했고,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 또한 이전에는 없었던 작은 샵도 만들었다. 특히 예술가가 생전에 가꾼 정원과 곳곳에 있는 조각 작품들은 다시 햇빛을 받아 사색을 더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리노베이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뉴욕시에서 30억원 가량을 지원해주었고, 퀸즈지역 자치구에서 약 15억 원을 후원받았다. 또한 매년 후원행사를 통해 마련한 재단 기금으로 나머지를 충당할 수 있었다. 이러한 후원금은 미술관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자리잡으며 있었기에 협력이 가능했을 것이다.


2003년에 새 관장으로 브롱스미술관(Bronx Museum of the Arts)의 전무이사로 재직한 제니 딕슨(Jenny Dixon)이 들어오며 미술관의 형식을 좀 더 갖추기 시작했다. 미술관이 리노베이션을 마친 후 그녀는 현직 미술관 큐레이터 인력을 모집해 예술가의 심층적 연구와 기획전시로 이사무 노구치와 동시대 작가들과의 맥락을 이어가고자 했다. 대대적으로 카탈로그 레조네 작업을 착수했던 20111차적으로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가 완성되었고 2013년에 2차로 완성되었다. 700여점 넘는 조각과 조각 샘플, 드로잉을 포함해 무수히 많은 자료들을 모아서 정리하는 작업이었고 아직도 남은 자료들은 연구되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 작업은 노구치 재단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으며 더불어 별도의 아카이브와 온라인에서 가능한 많은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2016년은 미술관 설립 30주년이 되는 해로 미술관에 있어서는 가장 큰 이슈가 많은 해였다. 특별전시로 <Isamu Noguchi at Brooklyn Botanic Garden>,<Museum of Stones>, <Tom Sacks: Tea Ceremony>전을 개최하며 약 30여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Phaidon출판사에서 30주년을 기념해서 사진가 티나 바니(Tina Barney)와 스테판 쇼어(Stephen Shore)가 노구치미술관을 주제로 촬영한 사진을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3번째로 열리는 이사무 노구치 미술상으로 건축가 안도 다다오(Tadao Ando)와 작가인 엘린 짐머맨(Elyn Zimmerman)이 수상했다. 매년 열리는 정기 후원회에서는 30주년 기념으로 여느 해보다 기금이 더욱 많이 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역이 상업화 되며 미술관이 관심을 많이 받게 되며 관람객들이 증가했다. 지역 부동산 가격은 올라가고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들어서려 하고 있다. 또한 접근성이 용이한 편이 아니었지만 곧 지하철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미술관은 고민이 많다. 우선 고층 건물로 인해 미술관이 햇빛에 가려지거나 하면 작가가 생전에 빛을 염두해 설치한 작품이 작가의 의도대로 보이기 힘들어질 것이다. 미술관이 작품 그 자체로써 유지되고 관람객들이 시간을 두고 감상하며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이 본래의 생전에 이사무 노구치가 추구한 것이기에 미술관은 가능한한 그런 방향으로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미술관은 가능한 다양한 관점으로 전시를 기획해서 새로운 관객을 창출해서 모으기보다 더 많이 밀려들어오는 관람객들과 거리를 두고자 한다.


예술가의 재단이 가지는 의미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작가의 모든 작업들과 자료들을 한 곳에서 관리함으로써 자료 공급채널이 편리해지는 것이다. 작품 이미지, 도록 자료, 작품 소장처 등의 아카이브 자료들은 오랜 기간 동안 연구원들이 모으고 정리해서 작품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하거나, 경매에 위탁하거나, 작품 유통이나, 출판에 있어서 이러한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면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더욱 심층적인 연구와 명확한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는 작가의 생가나 미술관을 통한 관람객들의 예술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다. 작가가 생전에 살던 집이나 작업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은 관람객이 직접적인 체감을 느낄 수 있다. 직접 쓰던 부엌, 침대, , 가전 용품을 보며 예술가가 바로 옆에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품에 표현된 특정 분위기는 개인의 성향과 밀접하기 때문에 예술가의 생활공간을 보면 더욱 생생하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는 한 예술가가 속했던 시대적 사회사와 미술사조의 역사에서 중추역할을 하는 것이다. 도널드 저드 같은 경우에는 그가 생전에도 동료 작가들이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종종 소장하고 그의 작품과 같이 영구 설치했다. 또한 저드 작업을 다수 가지고 있는 판자 컬렉션(the Panza Collection)은 최근 그의 소장품을 구겐하임미술관에 기증했다. 소장품은 로렌스 와이너, 브루스 나우만, 댄 플레빈, 도널드 저드 등이며 구겐하임미술관은 이에 대해 연구작업을 착수하며 미술사조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 질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사무 노구치도 생전에 시각예술 이외에도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가들과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그 또한 연구될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예술가의 재단이나 미술관은 한 예술가의 업적을 기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재단을 만들어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모아 연구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상세하고 명확한 기록을 해야 한다. 한편 공간이라는 것은 예술가의 흔적이 깃들어 있어 예술가와 관람객이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지점으로 가치가 생겨야 한다.


평소 예술가의 철학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평소에 더 많은 관심과 대화를 통해 많은 교류가 필요하다. 예술가는 본래 타협이 어렵고 자신만의 예술세계가 강해서 종종 동시대에 이해받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예술로 인해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고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든 미술가가 재단과 미술관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겨진 작품들은 유족들, 갤러리, 미술관, 컬렉터 등 모든 기관과 관계자들이 상호협조해서 유기적으로 작가의 작업이 오래도록 활용되고 연구되기 위한 보존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본 리서치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프로젝트 비아'의 지원으로 진행되었다.

- 이선민(1979- ) 아트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미술사 학사, 소더비인스티튜드 뉴욕 예술경영전공 석사 졸업. ‘Brilliant masterpiece’(현대자동차 주최, 2013)참여, ‘2015 세계문자 심포지아’ 총괄진행. 아트선재센터 홍보·교육팀장(2014-2015), (사)세계문자연구소 국장(2015)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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