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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뉴욕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 단색화

로버트 C. 모건

단색화(혹은 모노크롬회화)라는 미술 용어는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잘 이해되지 못할 수도 있으나 20세기 후반  한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미술 운동의 하나이다.  이 운동은 역사적 문맥에서 보면 한국의 군부 독재 하에 있던 1970년대 초에 시작된다. 이에 참여한 작가는 박서보, 하종현, 윤형근, 김환기, 정창섭, 정상화, 이우환 등이다. 이들 작가들은 한국이 문화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에 실망하였고 이들의 작품은 기존의 경직된 미학적 규범에 대한 일종의 도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광주항쟁 이전인 1970년대 억압적인 정권에서 이들 작가들은 이름을 내건 그룹을 만들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업하였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서로 간에 결속력을 가졌다. 이들의 작품이 처음으로 “단색화(Dansaekhwa)”라는 용어로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윤진섭이 기획한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이었다. '단색화'라는 용어의 등장이 군사독재에 저항하여 시위대들이 거리로 나갔던 한국 현대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인 광주항쟁 20주년과 일치한다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뉴욕 블럼앤포갤러리 '윤형근'전 전경, Photo: Genevieve Hanson


최근 뉴욕 블럼앤포갤러리에서 단색화의 대표적인 작가, 윤형근의 전시(1.16-3.12)가 진행 중이다. 이 전시는 1972년에서 말기까지 지속되었던 그의 완숙기의 암갈색과 울트라마린(군청색)시리즈 중, 소품과 중간 크기로 선정된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땅과 공기를 상징하는 두 가지 색상의 광물성 물감은 서로 섞여 있으며 오일이 베어져 나오기도 하고 켜켜이 쌓여진 일련의 층을 이룬다. 윤형근 작품의 형태들은 나무와 바위를 연상하게 하지만 기하학적 구조로 보이고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무엇을 그리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닌 무엇인가를 그리고 싶다.”고 하였듯이 모든 것은 지극히 환원적인 방식으로 되어 있다. 미국 미니멀아트 작가인 도날드 저드는 윤형근 작품의 뛰어남을 알아보았고 그의 작품들을 구입해서 텍사스에 있는 자신의 재단인 친나티 재단(The Chinati Foundation)에 전시했다. 블럼앤포갤러리에서 전시 되고 있는 작품은 18년 전에 저드의 컬렉션으로 소개된 후 처음으로 전시된 것이다.  


뉴욕 티나김갤러리에서는 윤형근과 비견할 단색화 작가인 하종현의 전시(2015.11.6-12.12)도 있었다. 하종현은 개념적이며 정신적 체계에 근거하여 특정한 시리즈를 오랜 기간 동안 전념해 왔는데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접합(Conjunction)>은 197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하종현의 독특한 표현 방식은 17세기 조선시대 회화에서 사용된 것으로 안료가 직조나 그 사이의 틈새를 통해 캔버스 뒤에서 밀어 올리는 기법을 따르고 있다. 하종현은 과감하게 얽힌 자국을 긁어서 한국적인 기호(한글)을 세기고 있는데 거친 움직임으로 오히려 부드러운 형상을 만들고 있다. 상대적인 느낌이 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서양인의 입장에서 보면 모순이나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도교에서 말하는 음양과 연결되는 역설적 조우가 된다. 빛은 어둠을 통해 인지되고, 창의성은 파괴를 통해 얻어지듯이, 에너지(기)의 이 두 특성은 우주 내에서 결코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그는 조선시대 화가의 작업 방법을 차용하여 과거를 포스트모던의 세계화라는 현재의 마당으로 끌어내고 있다.   


정창섭은 다른 단색화 작가들처럼 자신의 작품세계를 명확히 제시하는 하나의 개념, “명상”을 중심으로 작업하였다. 뉴욕 패로틴갤러리에서 진행되었던 전시(2015.6.4-8.1)도 이와 같은 제목으로 1980년대와 90년대의 초기 작품과 그의 경력에 정점이었던 말년의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는 하종현처럼 전통의 기법들이 사용되어 있고, 그가 추구한 기(氣)를 회화의 공간에서 보여주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정 작가의 모노크롬의 화면에는 숯검정, 진한 파란색, 흰색, 조밀한 붉은 산화물 및 빛과 어둠의 색상, 토양에서 축출되는 최소한의 색상들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들 작가들은 회화 작품에 색채의 울림과 색상의 자유로운 응용에 의한 표현을 하고 있지만 단색화의 상징인 “항상성(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동양적인 관점을 전하는 개념적인 회화이며 특별히 한국인의 긴장과 거친 물성을 보여준다. 인터넷 이전의 시기지만 이들 작가들은 뉴욕 미니멀리즘에 대해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작품에 촉매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니멀리즘은 실재의 공간, 실재의 시간에 존재하는 오브제, 그리고 명확히 인식하게 하는 수단으로 몸의 역할에 대한 이해에 근거한다. 단색화 작가들의 관심은 미니멀 작가들이 가지는 그러한 실용적인 문제에 있지 않았다.  


이들이 강조한 것은 회화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자연에 대한 문화적 읽기로 이해하였고 간접적으로, 그 작품들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만들어지는 미술에 대한 기대에 저항이었다. 그들은 고유의 색감과 필체로 그 땅의 본질에 근거하여 작업하였다. 단색화 작가는 그들 삶의 대부분을 상대적으로 무명으로 소외되어 작업하면서도 자신의 역사와 문화 내에서 방법을 찾고자 했다. 오늘날 관객들이 한국의 단색화가들의 작품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자연의 본성이 그린다는 행위를 통해 얼마나 진지하게 이해되었는가, 그리고 단색화 작가들이 작업에 몰입하면서 그들 자신과 완전하게 일체감을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오는 확신을 얼마나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였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본다.


※ 본 콘텐츠는 미국 미술잡지 『Hyperallergic』의 

'Korea’s Monochrome Painting Movement Is Having a New York Moment'를 요약·번역한 것이다.


 

로버트 C. 모건(Robert C. MORGAN, 1947- ) 뉴욕대(NYU) 현대미술사 및 미학박사. 예술가,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현재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와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 출강.

*번역 / Dr. 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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