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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프랑스, 미술계에 살아있는 오늘의 톨레랑스 정신

최선희

지난 11월 13일에 파리에서 있었던 테러로 인해 무고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은 후 프랑스는 충격과 분노, 슬픔과 공포의 감정들을 아직도 가까스로 추스르고 있다. 이 와중에 12월 6일 치러진 지방 선거 1차 투표에서는 이민자와 이슬람 종교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해왔던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점유율이 여러 지방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테러로 인해 분노하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감정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러나 2015년 마지막 날을 2주 앞두고 12월 13일에 개최된 지방 선거 2차 투표에서는 국민 전선을 견제하기 위한 공화당과 사회당의 연합으로 이를 결국 13개 지역 중에서 단 한곳에서도 우위를 점유할 수 없었다. 극우파가 정권을 잡게 될 것을 우려한 국민들은 힘을 합해 투표에 참여하였고, 자유과 평등, 박애를 표방해 온 프랑스의 자긍심을 가까스로 지켜낼 수 있었다.


아델 압세메드


그러나 이 두 번에 거친 선거 결과는 외국인을 혐오하는 극우파 정당의 지지율 28%라는 상황에 다다른 프랑스의 정치 사회적 문제들의 골이 매우 깊어졌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의 이민 정책이 성공적인지 못했음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고 프랑스 사회에 동화되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게토(Ghetto)를 쌓아 온 이민자 사회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마디로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다툼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는 타인의 다름과 자유를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주장해왔던 프랑스인들의 관용, 즉 톨레랑스의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에게는 더더욱 민감한 시안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극우파를 내심 지지하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프랑스에서 과연 이민자이자 이슬람 출신 작가들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이들이 예술가로서 경력을 쌓아가기위해 마주해야 할 장애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은 사실 프랑스 정치와 사회 상황을 깊이 파고들어 가는 연구와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민감한 작업이다. 프랑스의 현재 실업률은 극에 달하고 이 중에서 청년 실업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중에서 이민자 출신 자녀들이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서 겪는 불평 등은 프랑스 근현대 역사 속에서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아 왔다.


이는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전체가 오랜 세월 겪어온 고치기 힘든 고질병이 되었다. 반면 미술계는 어떠할까? 프랑스 최고의 미술 대학인 에콜데보자르에 전화해서 이슬람 출신의 지원자가 얼마나 되는지 그 통계를 문의하는 일은 매우 무의미하다. 프랑스는 법적으로 인종 차별이 금지되어 있고 인종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내세우는 국가이기에 지원자가 이민자인지 이슬람교도인지 가리는 작업 자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파리에 살고 있는 다수 이민자들의 생활수준이나 교육 수준은 태생이 본래 프랑스인에 비해 월등히 떨어진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파리에 있는 주요 갤러리들의 명단을 보면 프랑스가 2차 대전이후의 이민 정책으로 적극 받아들인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의 숫자는 매우 적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단지 인종 차별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이들 국가들에서 현대 미술의 역사가 매우 짧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현 프랑스 미술계에는 알제리나 모로코 태생의 작가들의 활동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서양의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간극에서 현 사회의 정치, 종교 등에 대해 비판하는 작업을 해오는 작가인 알제리 출신의 아델 압세메드, 모로코 출신의 무니르 파트미 등의 사회 비판적인 작품들은 프랑스 미술 평론가와 콜렉터들로부터 인정받아 왔다. 얼마 전에 수상자를 발표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상인 ‘마르셀 뒤샹’ 상의 수상자인 멜릭 오하니안을 비롯하여 나머지 세 명의 후보자 이름들은 전형적인 프랑스인 이름과는 다른 이민자들의 이름을 가졌다. 이민자로서, 나아가 이방인으로서 현 프랑스 사회를 바라보는 이들의 비판적인 시선은 오히려 프랑스 미술계와 나아가 프랑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담론을 제공하면서 프랑스 인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국수주의나 타 문화, 종교를 배타하는 마음들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또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 정착한 곳에서 동화되려는 노력 없이 자신들의 종교와 신념에 갇혀 사는 이민자들에게도 비판의 소리를 던진다. 예술은 과연 프랑스인들이 목숨보다 귀하다고 여겨왔던 톨레랑스를 영원히 대변하는 도구로 남을 것인가? 이는 대선을 1년 반 앞둔 프랑스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거친 미래의 시계를 내다보면서 조심스럽게 전망해야 하는 사안이 되었다.



최선희(1972- ) 영국 크리스티인스티튜션대학원. 런던 차이니즈컨템포러리 어씨스턴트 디렉터, 유니온갤러리 세일즈 매니저 등 역임. 『런던 미술 수업』(아트북스, 2008) 등 저술. 현 독일 쾰른 최앤라거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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