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47)박은선, 피사 공항 이어 피렌체 피티궁에 선다

이영란

이탈리아 피사 국제공항에는 어디서나 한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시계탑이 있다. 지난 6월 말 이 시계탑에 ‘Volare Arte-Park EunSun(Fiying Art-박은선)’이라는 사인이 나붙었다. 그 바로 아래 잔디밭에는 한국 조각가 박은선(1965- )의 눈부신 대리석 조각이 여행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여러 겹의 큐브와 구(球)가 결합돼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신작 <생성(Generazione)>이다. 그 옆으론 대표적 추상조각 4점이 양날개처럼 들어섰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처럼 자연스런 곡선으로 이뤄진 7m 높이의 육중한 대작 등이다. 공항 진입로에는 포도송이를 연상케하는 수직조각들이 설치됐다. 청사 내부에도 에스컬레이터 옆과 통로에 ‘VolareArte-박은선’전을 알리는 광고판과 작품사진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있다. 대합실에도 2-3m 크기의 조각들이 설치돼 피사 공항 전체가 작가의 독무대가 된 듯하다. 


이탈리아 피사 국제공항 입구에 설치된 박은선의 신작 <생성(Generazione)>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및 유럽 각지에서의 박은선 도시조각전을 눈여겨봐 온 헨로(Henraux)재단의 주도로 성사됐다. 헨로재단은 피사 공항에서 10년 전부터 미토라이, 카셸라, 야스다 칸 등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전을 열어왔다. 박은선의 작품은 오는 2017년 6월까지 토스카나를 찾는 여행객들을 맞을 예정이다.


박은선은 두 가지 빛깔의 대리석(또는 화강석)을 스트라이프 무늬처럼 붙인 뒤 이를 쌓아올린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근래에는 보다 본질적인 형태인 큐브 또는 역삼각, 원추형 탑으로 형상을 변주하고 있다. 작가는 지난해 로마 콜로세움 옆의 고대 유적지 ‘메르카티 디트라이아노’에서 개인전을 가진 데 이어 올해도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밀라노의 빌라기를란다시립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등 현재 이탈리아 5곳에서 초대전을 개최 중이다. 또 스위스 바드라가츠트리엔날레(5-11월)에도 참여하고 있다. 내년에는 피렌체시 초청으로 피티궁(宮)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피티궁은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메디치가문의 심장과 같은 곳으로, 궁전 내부와 보볼리정원에 조각 25점을 설치할 예정이다. 파리의 베르사유가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이우환의 전시로 화제를 모았다면, 피렌체 피티궁에선 헨리 무어의 전시가 열린 바 있다. 작가는 “피사 공항 전시 오프닝에 참석한 피렌체 시장이 ‘작품이 무척 인상적이다’며 시(市) 초대전을 제안해 내년 5월부터 피티궁과 보볼리 정원에서 개인전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작가는 “20년 넘게 한눈 팔지 않고 이탈리아의 소도시(피에트라 산타)에서 작업에만 매달렸더니 이런 영광이 찾아왔다. 지난해 로마 전시도 뜻깊었는데, 찬란했던 르네상스문화의 본거지에서 전시를 열게 돼 흥분된다. 특히 보볼리정원은 동양작가에겐 처음 개방되는 곳이라 어깨가 무겁다”고 밝혔다. 박은선은 ‘조각의 본고장에서 승부를 내보겠다’는 마음으로 경희대 졸업 후 이탈리아로 유학 온 지 23년째다.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IMF사태 때는 아내와 갓난아들을 한국으로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그는 “한번은 하숙비마저 떨어져 거리로 쫓겨날 상황이었다. 일요일에 갈 곳도 없어 작업장에서 돌을 만지고 있었는데 낯선 이탈리아 부부가 기적처럼 작품을 사갔다. 이후로도 숱한 위기와 외로움을 극복해가며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학교수직 제의도 있었지만 ‘자연의 일부’인 돌이 좋고, 작업한 만큼 결과가 돌아오는 조각이 좋아 작업에 혼신을 다했다. 그 결과 오늘 유럽 조각계에서 단연 두각을 보이는 작가로, 가장 왕성하게 작품을 내놓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형편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생활은 자리를 잡았으나 대작 위주로 작품을 만들다보니 제작비에 대부분이 투입되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 연간 4-5회의 전시를 소화 중인 그는 2-3년 내로 남미에서도 본격적인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작가에게 “왜 힘들게 두 가지 색을 띠처럼 교차시키느냐”고 묻자 “젊은 시절부터 반복적인 패턴에 관심이 많았다. 또 외국인으로 살면서 갖게 된 이중적 정체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기둥은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싶은 염원이고. 결국 내 자신이 투영된 셈”이라고 했다. 돌의 결을 따라 의도적인 균열을 만드는 것도 박은선 작품의 특징이다. 마치 작품에 숨결을 불어넣는 듯한 이틈은 동양의 도공이 일부러 완벽한 연적의 끝을 살짝 비틀어, 파적의 멋을 구가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영란(1957- ) 이화여대 신문방송학 학사, 세종대 언론문화대학원 석사, 홍익대 미술대학원 석사. 전 헤럴드경제 편집국 부국장(미술전문 선임기자) 역임. 이화여대, 수원대 강사.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