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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사진, 온 국민 포토그래퍼 시대의 예술성과 대중성

신수진

요즘 주말에 복잡한 동네로 외출을 하면 새삼스러운 감회에 빠지기 일쑤다. 인사동 삼청동 길, 청담동 압구정동 길 할 것 없이 한 집 건너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놀라운 것은 길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 건너 카메라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핸드백에 넣어 다니는 소형 디지털 카메라(일명 똑딱이 디카) 수준이 아니라 이삼년 전만 해도 고가 장비로 인식되었던 덩치 큰 카메라들을 자랑스럽게 걸고 들고 다닌다. 출시된 지 9개월쯤 된 특정 제조사의 디지털 카메라 단일 기종이 올해 월평균 만 오천 대씩 팔려나갔다고 하니 내 눈에 그렇게 많이 띄는 게 놀라운 일만도 아니다. 장비로만 보면 그야말로 온 국민이 사진가인 시대이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장비의 변화는 카메라 산업의 경제 논리를 차치하고도 여러 숨겨진 의미를 지닌다. 우선 그들이 추구하는 혹은 즐겨 찍는 사진의 내용과 용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보급형 카메라의 경쟁력은 뭐니 뭐니 해도 편이성에 있었다. 오랫동안 휴대하기 좋은 크기와 무게, 셔터만 누르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간편 기능이 그 경쟁력의 근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자의 카메라 시장은 이러한 보급형 즉 대중적 취향에 부합하는 기계의 속성에 대한 상식을 완전히 거스르고 있다. 크고 무거운 것은 물론이고 복잡한 기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카메라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동안 유행하던 싸이(미니 홈피)용 사진에 만족하지 않는다.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거나 얼짱 사진을 만드는 데는 핸드폰 카메라로도 충분하게 되었으므로, 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의 관심은 ‘전문가 따라잡기’로 쏠리고 있다.


만인의 예술을 향하여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의 눈을 빌어 대상을 기록하는 도구로 시작되었고, 카메라 산업이 대중성을 추구해 온 역사만큼 태생적으로 대중적인 매체이다. 사진술 발명 초기에는 사진이 그림 그리는 도구로도 활용되었지만 결국 바로 그 모든 사람에게 손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매체의 독립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법이 내용을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매체 환경이 예술개념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오늘날 디지털 카메라의 성능과 보급률은 이제 더 이상의 전문가의 성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태여 팝아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대중성과 예술성은 더 이상 상호 배타적 개념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의 사진은 모든 사람의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가. 무엇이 예술적 가치를 보장하는가.



최근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쓰인 인물사진들을 작가의 차별화된 시각에 초점을 맞추어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같은 사진이 화보잡지와 미술전문지에서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서로가 지나친 예술성의 무거움과 대중성의 가벼움을 이유로 들어 익숙한 이미지와 논리를 낯설게 여기는 반응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는 어쩌면 스스로가 대중성 혹은 예술성 중 한쪽만을 생존의 기반으로 택하였다고 믿는 태도에서 비롯된 시대착오적 경직성이다. 이제 사람의 눈을 대신하는 카메라의 눈은 어디에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사진 이미지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된 것이다. 누구나 카메라의 버튼만 누르면 자신의 그림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그만큼 사진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의 소통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의 기능적 측면으로 예술적 가치를 가르는 낡은 발상을 버리고,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어서 진정한 소통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신수진(1968- ) 연세대 대학원 심리학 박사. 저서『사진, 읽기 혹은 보기』등이 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거울신화-우리 시대의 감성적 얼굴을 만드는 12인의 사진가전'(5.26-8.26)을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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