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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진의 르네상스가 도래하는가?

김승곤

지금 전국에 사진과를 둔 대학만도 20여 군데가 훌쩍 넘고 대학원 과정을 둔 곳까지 합치면 그 수가 40여 개 가까이 된다. 사진학 박사과정을 둔 곳도 여러 곳이다. 국내외에서 열리는 굵직한 비엔날레에서 사진이 좋은 대접을 받고 있고, 아직은 많지 않지만 그런 대접에 합당한 활동을 보여주는 사진가들의 숫자도 늘고 있다. 사진전도 사진을 보는 사람도 많아졌고, 볼만한 사진잡지도 여러 개 생겼다.


사실 80년대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사진은 무척 암울했다. 70년대 후반이후 경제적인 성취를 배경으로 문화가 개방되었고, 새로운 시대와 문화의 세례를 받은 사진 전공자들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사진가들, 그리고 금욕적인 아마추어리즘의 도그마를 깨고 사진을 자유로운 공간으로 풀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진가들이 먼저 변화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고, 새로운 표현에 대한 젊은 사진가들의 욕구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전근대도 근대도 거치지 않은 한국사진이 90년대 말에 이르러 순식간에 동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 공간으로 풀려나온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시도해도 좋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90년대의 이런 분위기를 누구는 한국사진의 르네상스라고 했고, 누구는 사진이 순수성을 잃고 거친 힘만으로 파국을 향해서 무분별하게 달려가고 있다고도 했다. 어쨌건 새로운 21세기를 10여 년 남겨둔 무렵부터 한국사진은 이렇듯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여러 차례 괄목할만한 변화를 겪어 나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사진의 표현영역이 확대되고 이전에 비해 위상도 현저하게 높아진 것은 누구 눈에도 분명했다. 사진 또는 사진을 미디어로 한 작품들이 대형 미술관과 이름 있는 화랑의 벽에 걸리는 것을 지금은 아무도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미술에서 차지하게 된 사진의 자리는 매체의 순수성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수성을 버린 대가로 얻어진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관객들을 사진 쪽으로 끌어들인 데에는 몇몇 상업화랑과 기획자들의 역할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이 사진의 고질적이고 불균형한 구조 자체를 크게 바꾸어놓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계 풍요속의 빈곤

우선 국가의 문화정책이 그렇다. 지난 98년, 정부는 이른바 ‘사진영상의 해’라는 것을 만들어서 사진단체에 운영을 맡겼지만 이것도 정부예산만 낭비시킨 소모적인 이벤트로 끝났다. 현 정부에서만도 문화예술위원회, 아트뱅크, 강사 풀 제 등 지금까지 몇 가지 새로운 제도들을 내놓고 있지만, 사진은 여전히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배는 고프지만 정작 밥상을 차려놓아도 사진 쪽에서는 먹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도 없고, 어쩌다 밥상 근처까지 불려가는 사람도 자기 몫을 제대로 찾아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준비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다른 예술단체들과는 달리 사진 쪽에서는 지금까지 변변한 정책 제안서 하나 내놓은 것이 없는 것만 보아도 허약한 구조를 알 수 있다. 숫자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대학교육도 마찬가지다. 취학자 수가 격감하면서 입학정원을 줄여서라도 살아남는 대학은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그동안 무수하게 난립된 사진학과의 대부분은 폐과되거나 통폐합 위기에 몰려있고, 이런 현상은 당분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교육의 내용과 질을 높이면 학생들이 자연히 몰려들게 되어 있지만, 경영자에게는 교수들이 연구에만 전념하도록 놓아둘 여유가 없다. 특히 지방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외판원 버금가는 고단한 ‘영업활동’을 벌여야 한다. 새로운 미디어환경에 맞는 커리큘럼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느린 것도 사진학과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수년간 대형화랑들이 빈번하게 사진전을 열고 사진가들과 계약을 맺는 것은 잘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런 수혜를 입는 것은 지극히 한정된 숫자의 ‘잘나가는’ 작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곧바로 사진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주로 대중적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중견작가나 이른바 ‘대가’ 중심의 안전한 전시로 짜여지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사진의 문화?경제적 가능성을 발굴하거나 확산시키는 일에 대해서 장기적인 안목이나 뚜렷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의 영향력 있는 화랑들의 이런 태도가 결국 사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따름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금년 강원도 영월에 처음으로 공립의 사진박물관이 건립된 것은 그나마 큰 수확이다. 크고 작은 사진미술관을 30여 개나 갖고 있는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공립미술관에 사진전문 학예원 한 명 두지 못했던 처지를 생각하면, 뒤늦게나마 제대로 된 사진박물관을 세워서 기억과 문화적 유산을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또 2002년부터 시작된 동강사진축제도 4회째를 맞는 금년부터 본격적인 국제이벤트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국제적인 사진의 장면에서 글로벌화와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일본과 중국, 대만 등과 함께 미국과 독일 등 구미에서 150여명의 사진전공 대학생과 교수들이 참가해서 열린 국제대학생사진캠프는 동북아지역에서의 문화적 결속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문화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만든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진이 들어오고 120여 년이 지난 우리나라에 진정한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인가. 아직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Is the Renaissance of photography coming? 


From around the end of the 1970s Korean photography began to flourish with many photographers and photography students returning from abroad. This phenomenon coincided with economic growth and post-modern movements in arts.


In the 2000s photography still enjoys popularity. Commercial galleries and exhibition organizers succeed in attracting a large audience, which is, however, at the expense of the authenticity of the photography. Although many universities opened photography departments, support from the government for photography has been lamentable. Blame also falls on the faculties of photography in that they failed to keep up with the fast change in new media. 


In this circumstance it is fortunate that a public museum for photography opened this year in Young-wol, Kang-won-do Province. Nevertheless it is doubtful whether the Renaissance of Korean photography will come ever since its introduction to Korea 120 years ago.


- KIM, Seung-Kon



김승곤(1940- ) 일본 츠쿠바대 예술학 석사. 대한사진문화상 학술평론상(2001), 일본사진협회 국제상(2004) 수상. 계간 사진비평 주간 역임. 현 국립순천대 인문사회과학대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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