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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화’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김백균

지금 우리 미술계에서 ‘한국화’는 아주 미묘한 경계위에 서 있다. 그 경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자못 ‘명’(名分)과 ‘실’(實體)의 불일치에 의한 오해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한국화’는 ‘동양화’라고도 불린다. 이 두 용어의 탄생은 그 맥락이 사뭇 다르지만, 우리는 관습적으로 ‘한국화’와 ‘동양화’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동양화’ 또는 ‘한국화’라는 명칭은 ‘서양화’의 대비 속에서 탄생했다. 한국에서만 아니 동북아시아에서만 존재하며 유용한 이 새로운 개념들은 동북아시아가 근대를 받아들이는 복잡한 상황과 모순을 반영한다. 


‘동양화’라는 명칭은 제 1회 선전(鮮展)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그 용어의 진원지는 일본이며, 당시 일본이 대륙침략의 기치로 내세웠던 대동아공영권의 이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화’라는 명칭은 ‘동양화’라는 용어의 사용에 대한 반성에서 태어났다. 실체가 없는 ‘동양’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동양화’라는 명칭의 사용에 대한 재고가 일어나자, 그 대안으로 ‘한국화’라는 명칭의 사용이 제기되었다. 동북아시아에서 자신의 전통적 방법론에 의지하여 그린 그림을 중국에서는 ‘국화(國畵)’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일본화’라고 쓰니 우리도 주체적인 입장에서 ‘한국화’라고 부르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주체를 부르짖을수록 비주체적으로 되는 역설을 본다. 동북아시아를 제외하고 세계 어디에도 이러한 개념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화’나 ‘영국화’, ‘미국화’ 같은 근대민족국가의 개념과 결합한 그림이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화’ 또는 ‘동양화’라는 개념의 출현은 강요된 우리 근대의 아픔이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특수한 상처이다. 또한 이러한 아픔은 우리사회 보편적 모순의 근원과 같은 궤를 걷는다. 이 문제가 단지 ‘한국화’ 또는 더 나아가 ‘미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사유와 실천을 포함한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는 의미이다. 철학에도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구별이 있으며, 건축에는 ‘한옥’과 ‘양옥’, 의학에는 ‘한의’와 ‘양의’의 차별이 있다. 


한국화의 열려있는 가능성

우리에게 근대화의 과정은 철저하게 서구화의 길이다. 화려한 산업화 이면에는 전통적 삶의 방식에 대한 부정과 형식의 파괴가 있었다. 그러므로 근대이후 우리사회에서 전통적 삶의 가치관은 언제나 근대의 발목을 잡는 소수의 안티세력을 뜻한다. 군사, 천문, 정치제도, 과학 등에서는 이미 그 미미한 흔적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지 않으면, ‘전통’이라는 이름을 포장되어 박제가 된다. 한복은 명절에나 입는 장식품이 되었으며, 관혼상제와 노동, 슬픔과 기쁨을 함께 했던 국악은 일상을 떠나 무대로 올라갔다. 적어도 형식적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화’에 대한 이해 역시 이러한 개연성이 다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형식 이면에는 보다 복잡한 근원적 문제가 자리한다. ‘한국화’의 정체성 확보가 동서의 확연한 구별에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구별이 단지 형식적 차이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가치관의 차이가 내재되어 있다. 우리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정신적 또는 육체적 양생(養生)의 최적을 찾기 위한 노력과 그 결과가 이러한 구별과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지금 현시점에서 ‘한국화’의 존재이유를 나타내며, ‘한국화’의 가능성을 열려있게 만드는 점이다.


이러한 역할 수행이 가능할 때 ‘한국화’는 삶에 대한 성찰과 다양한 인식, 풍부한 체험에 대한 감성적 모색이라는 예술 본연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이것은 오랜 세월 동안 습관으로 굳어져 의미를 잃은 죽은 가지를 털어내고, 삶에 대한 진정한 깨우침을 바탕으로 사회구조의 갈등 속에서 화해와 전진을 이루며, 현재의 협소한 동서의 이분법적 개념의 사슬에서 벗어나 명과 실을 회복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The future of 'Korea Painting'


Nowadays 'Korean Painting' is on the border of delicate circumstances, which rise from misunderstanding the difference between 'name' and 'reality'. 'Korean Painting' is also called 'Oriental Painting'. Though the two names were derived from different origins, we customarily draw no lines between them. 


'Oriental Painting' or 'Korean Painting' was coined in contrast with 'Western Painting'. These names that are understandable only within north-eastern Asia reflect the complex and contradictory processes of modernization in this area.


A clear-cut division of the East and the West helps us establish the identity of 'Korean Painting'. Such division, however, should not be limited only to formal differences. Also required to be considered is the difference in the attitude of life and the sense in values. The real division and difference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come as a result of our endeavor to recuperate the best of our spiritual and physical conditions as well as the introspection on the essence of our life. Here we find the raison dtre and possibility of 'Korean Painting'.


-Kim, Baikgyun



김백균(1968- ) 중국 베이징대 철학과 박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특별연구원 역임. 현 중앙대 한국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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