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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007년도 미술계 풍경

박영택

2007년도 미술계 풍경

_너무 많은 사건, 너무 많은 말들



올 한해 내내 대선정국 속에서 횡행한 그 무수한 정치의 수사학에 시달렸던 귀와 몸이 탕진했다. 모든 문제를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그 수사학을 듣노라면 거의 공포에 가까운 슬픔이 밀려든다. 저능아집단인 그 정치인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 현실적 삶을 규정하는 실체라는 사실이 더없이 비극적이다. 그런 요동 사이에 신정아의 학력위조사건과 그녀의 거짓말, 변양균 전 실장이 보여주듯 비전문인이 전문인을 추천하고 모든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야 마는 한국 권력층의 욕망, 새삼스럽지 않은 미술대전의 심사비리 그리고 박수근, 이중섭 위작사건 및 당사자들의 해괴한 발언, 뜨거웠던 미술시장과 경매를 둘러싼 잡음,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둘러싼 삼성과 서미갤러리의 아이들 장난 같은 떠넘기기 등이 마구 널을 뛰었다. 서로 거짓말을 하고 떠넘기고 자취를 감추고 도망가버리는 식의 행동은 이제 정치판이나 미술판이나 하등의 차이가 없다. 그런 사례가 끝없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한 해였다.


경매는 시장을 왜곡, 전시는 아트페어화

미술계에서 이토록 많은 일과 많은 말들이 오갔던 한 해는 없었던 것 같다. ‘미술’이 언론에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해다. 미술계는 이제 속된 말로 ‘봉’이 되었다. 누구나 쉽게 욕하고 무시하고 싸잡아 비난받기에 족한 모든 것을 고스란히 제공해주었다. 비리의 온상이자 외부와 절연된 체 내부에서 마냥 썩어 들어가는 희한한 곳으로 치부되었다. 우리 사회 ‘공공의 적’이라도 된 듯 싶다. 학력위조가 통하고 실력이 없어도 행세할 수 있고 막강한 빽만 있으면 안되는 게 없고 돈주면 상도 받고 위작이 판치고 눈 먼 돈들이 몰려들고 경매는 시장을 왜곡하고 작가들은 한 순간에 몇 배나 오른 가격으로 시장의 스타가 되고 그룹미술관은 비자금이나 세금 수탈의 온실이 되는가 하면 그룹 오너들의 품위 차원에서 사인화 되고 모든 전시는 아트페어화 되어버렸다. 이제 이곳에서 전시는 시장전시와 경매만 살아남고 의미 있는 기획전이나 개인전시는 소멸될 것 같다. 그림이 팔려야 되고 작가들 역시 팔아야 먹고살지만 좋은 그림이 제작되고 그런 작품이 인정받고 논의되면서 자연스레 시장에서 팔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그 모든 과정이 생략된 체 화상과 경매에 의해 조작되거나 연출된 작품들만이 눈이 없고 귀만 있는 컬렉터들에 의해 투기적으로 거래되는 실정이다.


너무 뜨겁고 거칠고 폭력적이고 경박하고 노골적인 미술판이 급속히 보수화 되고 오로지 자본과 경제적 관점만이 절대시되는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로인해 빚어진 총체적인 모순이 한 순간에 모조리 발화하고 있다. 다른 어느 예술영역에 비해 미술계란 곳이 더 많은 문제를 간직하고 있고 또한 그것이 정화되거나 자체로 걸러지지 못하는 과정에서 그간의 것들이 한꺼번에 분출되어버린 것이다. 미술계의 성장과 시장의 번성, 유능한 작가군의 양산, 한국 화랑의 해외진출, 홍콩 크리스티와 뉴욕 소더비 경매 등에서 한국 젊은 작가들의 두드러진 성과 등이 있었지만 그런 외형적 성장만을 중요시하게 볼 것이 아니라 미술계 내의 여러 구조적인 문제를 다시 점검해보아야 하는 시간이 되었음을, 그것도 시급히 돌아보아야 함을 알려준 한 해였다. 그런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풀어나가야 할 지가 모든 미술인들의 문제가 되었다.


쓸쓸한 미술계 풍경

작년과 동일하게 올 한해도 여전히 극사실적인 그림과 팝 적인 회화가 양산되었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 미술계의 보수성과 상업주의에 따른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회화에 대한 풍성한 담론과 비판적 논의와는 무관한 지점에서 얄팍하고 공허한 손의 놀림이 지배적인 그림들이 최근 시장이 요구하는 그림들이다. 특히 서양화 이외에 다른 장르는 시장에서 전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아울러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팔리는 작가들이 마치 동시대 중요한 작가들인 것처럼 위장되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 작품성이 곧바로 시장과 직결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비평이 죽고, 비평이 사라진 시간대에 오로지 힘있는 목소리, 권력과 자본이 된 목소리는 팔리는 작가와 작품들이 되고 있다는 것은 더없이 우울한 풍경이다. 이제 작가들은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어떻게 해야 팔릴까 하는 문제만을 고민하고 있다. 미술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리고 그런 처세랄까 루트를 알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한없이 커지고 그것이 힘이 되고 권력이 되는 것이 이곳 미술계의 풍경이다. 알다시피 미술이란 정답이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사기와 가짜가 판칠 수 있는 희한한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이란 여전히 사물과 세계를 보고 이해하는 놀라운 눈과 감각,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과정이며 이를 판독하며 이해하는 취향과 안목의 투쟁이기도 하다. 인간의 인성과 내면의 가치가 시험받는 그런 영역이다. 그런 질적인 측면들에 대한 엄정한 위계의 존중과 인정은 부재하고 다만 상업적인 척도와 특정한 자리, 권력이 곧바로 가치와 질로 연결된다고 믿는 이 후진적 발상이 결국 모든 문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올 한해가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일 것이다.



박영택(1963- ) 성균관대 석사. 마니프 미술평론상(1995) 수상. 아트포스트 기자,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현 경기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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